관원놀이의 하나로 ‘감영놀이’라고도 한다. 음력 정월 14∼15일에 「북청사자놀음」과 함께 행해졌다. 14일의 놀이는 15일의 예행연습에 해당하며, 모의재판, 관원의 행차, 횃불싸움, 사자놀이가 중심이 된다. 관원들의 행차의식을 모방하고 새로 도임한 신임 수령이 백성들의 죄를 판단하는 것이 주요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1900년대 초기까지 성행했다가 토성리 출신 월남민들에 의해 1993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발표되는 등 남한에서도 월남민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
유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토성에서 멀지 않은 중산에서 아들 삼 형제와 함께 살던 한 도사(道師)가 토성으로 옮겨온 수년 뒤, 맏아들이 갑자기 죽었으며 그 설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둘째아들도 비명횡사를 하였다.
하루는 도사가 토성 동남 각 축대 위에서 낮잠을 자다가 한 꿈을 꾸었다. 기골이 장대하고 찬란하게 꾸민 세 사람의 장수가 수십 명의 장졸을 거느리고 갑자기 앞에 나타나자, 그는 놀라서 대병 행차(大兵行次)의 길가에서 잠을 잔 자기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빌었다.
대장은 자기가 숙신(肅愼: 춘추전국시대 중국의 동북쪽에 있던 나라)의 이름난 장수라고 하면서(토성은 원래 숙신국의 옛 도읍지라고 한다.) 옛날에 자기 겨레가 이곳에서 잘 살았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편안히 살도록 해주면 도사의 자손도 편안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도사는 앞으로 매년 그들을 위해 정중한 제사를 올리겠다고 약속하였다.
꿈에서 깨어난 도사는 꿈이야기를 마을 사람들에게 들려주자, 주민들이 협력하여 제단을 짓고 해마다 관원놀이를 하게 되었는데, 이후부터 비명횡사(非命橫死)하는 주민이 없어지고 풍년이 들어 평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관원놀이는 고제당(古祭堂)의 서낭신에게 제사지내는 것에서 시작되며, 복장과 도구는 관청의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조선 말기의 홍원 현감(洪原縣監)이었던 김시현(金是鉉)이 이곳에 살면서 ‘신별수(新別需)’라는 조식을 만들어 이 놀이를 유지하다가, 1907년 남병영이 일제에 의해 강제해산되면서 의장기·군악기·복색 등 군장품을 사들여 관원놀이의 차림을 정비하였다. 이후 1940년대에 일제의 압력으로 중단되었지만, 고제당의 제사만은 해방 당시까지 계속되었다.
관원놀이의 ‘관원’은 절도사·행부사[中軍]·남우후·삼아문(三衙門)의 장관을 이르는 것으로 현지에서는 삼영문(三營門)이라고 한다. 이 삼영문은 마을 사람들 중에서 부정이 없고 덕망이 높으며 그 해의 연수(延壽: 연역익수의 준말)가 가장 좋은 사람으로 뽑는다. 놀이의 준비를 위해 이전 해의 섣달 보름부터 회의를 시작하여 비품을 준비한다.
정초가 되면, 첫 정일(丁日)을 중심으로 9일간에 걸쳐서 성 남쪽에 위치한 고제당의 서낭신에게 세 번 제를 지낸다. 제삿날 3∼4일 전에 도가의 대문에는 소나무로 장식을 하고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다. 정월 10일에는 남병사, 중군, 본관의 천거를 위한 동리총회가 도청에서 소집된다. 이때 토성리의 성인 남성은 모두 참가하는데, 관원으로 선출된 집에서는 잔치를 하고 악대들은 축하하는 뜻에서 이들 집을 방문하여 풍악을 울리며 사자춤을 춘다.
놀이는 닐리리춤, 치죄(治罪), 관원의 행차, 치제(致祭), 횃불싸움, 사자놀이의 순으로 진행된다.
‘닐리리춤’은 대보름 아침에 마을 여인들이 모여 닐리리를 합창하며 북소리에 맞추어 군무를 춘다. ‘치죄’는 악대가 중군, 본관, 남병사의 순서로 찾아가서 말에 태우고 도가에 와서 대청에 앉게 한 후, 동리의 불량배, 게으른 자, 관원놀이에 불참한 자에게 벌을 내리는 내용이다.
‘관원 행차’는 치죄를 마친 후 악대의 반주에 맞춰 깃군들이 가지각색의 깃발을 휘날리며 도가마당에 들어와서 깃발춤을 춘다. 이때 탈을 쓰거나 환을 그리게 해서 귀신과 도깨비같이 차린 무리들이 깃발 속에 뛰어들어가서 춤을 추며 돌아다닌다. 이어서 고제당을 향하여 깃발을 앞세우고 일행들은 도가마당을 나간다.
관원놀이에는 무려 300여 명의 인원이 참여하는데, 마을 주민을 합하면 700~800여 명이 참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놀이를 구경하기 위하여 다른 마을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토성에 왔다고 한다.
관원놀이는 지방에 따라 관아놀이, 원놀이, 원놀음, 원님놀이, 사또놀이, 사또놀음, 서낭놀이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강원도 동해시 북평의 원님놀이, 경상북도 영양군의 원놀음, 안동시 풍산읍 수동의 진법별신놀이, 충청남도 부여의 은산별신제의 행군, 경상남도 통영의 사또놀음 등이 있다. 경상북도 안동과 의성, 청송 등지에서는 서당놀이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