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5년(至元 2)에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 칸이 국사(國師)인 라마승 파스파에게 명하여 만들어 1269년(至元 6)에 반포한 것으로, 티베트 문자(혹은 서장문자(西藏文字))를 개량하여 정방형(正方形)으로 만든 문자이며, 훈민정음에 참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65년 몽골 원나라 국사인 파스파가 쿠빌라이 칸(세조)의 명을 받아 몽골어를 표기하기 위해 만든 문자로, 몽골신자, 몽골국자, 방형몽골문자라고도 한다. 몽골어뿐 아니라 한어(漢語), 티베트어, 산스크리트어, 튀르크어 등 몽골 통치 아래 있던 여러 민족의 언어를 표기하기 위한 공용문자로 고안되어 1269년 완성 · 공표되어 1352년까지 원나라의 공식 문자로 사용되었다.
라마승 파스파가 자신의 모어를 나타내는 티베트 문자를 바탕으로 정방형, 즉 네모꼴로 만들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쓰게 만든 표음문자이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태조 때부터 이 문자를 철저하게 폐절시켜서 청대에 이르기까지 파스파자나 몽골신자 등의 명칭 사용이 제한되었고, 조선에서도 이에 따라 몽골어로 사각문자라는 뜻으로 첩아월진(帖兒月眞), 첩월진(帖月眞)이라고 부르거나 그냥 자양(字樣)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훈민정음 창제 이래 오랫동안 훈민정음이 바로 이 파스파자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취지의 주장이 일찍이 이익의 『성호사설』, 유희의 『언문지(言文志)』 등에서 제기된 바 있고, 미국의 역사학자인 레드야드(1966/1998), 유창균(1978), 정광(2009, 2012) 등에서 꾸준히 파스파자가 훈민정음의 창제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원사(元史)』 202권 「전(傳)」 89 ‘석로 파스파(釋老八思巴)’ 조에는 파스파 문자가 41개의 운모(韻母, 즉 聲母)로 이루어졌다고 설명되어 있고, 문자학 전문 인터넷 사이트인 옴니글롯(omniglot)에 따르면, 파스파자는 자음 32자, 모음 7자, 반자음 2개, 총 41자로 되어 있다. 성희명(盛熙明)의 『법서고(法書考)』나 도종의(陶宗儀)의 『서사회요(書史會要)』에도 파사파자가 총 43개의 성모로 이루어졌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41개의 예만 제시되어 있다.
파스파자는 티베트 문자를 정방형으로 변형시켜서 몽골어 및 몽골 지배하의 중국을 구성하는 여러 민족의 언어, 즉 한어, 티베트어, 산스크리트어 등을 나타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문자인데, 우리나라는 원 통치기이던 고려 말에 유입되어 조선시대 세종대에 훈민정음을 만드는 데 참고된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