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담(尹譚)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대숙(大叔). 아버지는 판관 윤취은(尹就殷)이다. 1646년(인조 24) 진사시에는 합격하였으나, 대과에 급제하지 못하였다. 1668년(현종 9) 40세에 비로소 선공감(繕工監)에 등용되었으나 어버이의 병으로 사임하였다. 그 뒤 다시 복직하여 1684년 공릉참봉(恭陵參奉)을 거쳐, 한성부판관에 이르렀다. 그러나 1686년(숙종 12)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로 있다가 근무 태만을 이유로 파직된 뒤로는 다시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성품이 조용하고 지조가 굳어 남에게 아부하거나 청탁하지 않았다. 특히,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죽은 뒤 정문(旌門)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