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 등과 함께 역모를 꾸민다는 죄로 처형된 문신·공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392년 태조 이성계(李成桂)를 추대하는 데 공을 세워,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되어 150결의 공신전을 받았다. 1394년(태조 3) 고려의 왕씨(王氏) 일족을 제거하기 위하여 왕씨들을 강화도·거제도 등 해도에 유배하였는데, 오몽을은 강화에 유배하는 책임을 맡았다.
1396년 연산부(延山府)의 수령을 겸임하고, 이듬해는 강원도도관찰출척사에 임명되었으며, 1398년 보성군(寶城君)에 봉하여졌다. 같은 해 이른바 제1차 왕자의 난에 연루되어 순군(巡軍)에 투옥되었다가 곧 이산진(伊山鎭)으로 유배되었다. 사첩(謝帖: 임금이 내린 임명 사령장)이 몰수되고 토지와 노비가 국가에 환수되었으며, 10월에 복주(伏誅: 형벌에 복종하여 죽임을 받음)되었다.
죄명은 정도전(鄭道傳)·남은(南誾) 등과 함께 불궤(不軌: 반역, 법을 어김.)를 꾀하여, 서얼 왕자인 이방석(李芳碩)을 왕세자로 세우고 종친을 해치려 하였다는 것이다. 1409년에 녹권(祿券)이 추탈되고, 토전(土田)과 노비가 몰수되었으나, 1422년(세종 4) 공신영자(功臣影子)를 자손에게 돌려주었다.
참고문헌
- 『태조실록(太祖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고려조과거사적(高麗朝科擧事蹟)』
- 『조선초기삼공신연구』(정두희, 『역사학보』75·76, 1977)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