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용여(用汝), 호는 백석(白石). 아버지는 형조좌랑 유태형(柳泰亨)이며, 어머니는 한양조씨(漢陽趙氏)로 승지에 증직된 조유정(趙惟精)의 딸이다. 최명룡(崔命龍)·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1616년(광해군 8)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인조반정 후 김장생의 천거로 오수찰방(獒樹察訪)에 제수되었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에는 양호호소사(兩湖號召使) 김장생의 막하에서 의병모집에 많은 활약을 하였다.
그 뒤 고향에 은거하여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전념하다가 1630년 다시 의금부도사에 제수되었다. 1636년 기린찰방(麒麟察訪), 이듬해 왕자사부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인하여 모두 사양하였다.
1650년(효종 1) 왕이 자의(諮議)로 불렀으나, 병들어 나아가지 못하였다. 특히, 『대학(大學)』·『심경(心經)』·『근사록(近思錄)』 등을 탐구하였다. 지평(持平)에 추증되었으며, 전라도 김제의 백석서원(白石書院)에 봉향(奉享)되었다. 저서로는 『백석유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