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계 선생 순절비

  • 역사
  • 유적
  • 조선 후기
  • 시도문화유산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에 있는 조선후기 병자호란 당시 전사한 남양부사 윤계 관련 추모비.
시도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정진각
  • 최종수정 2024년 07월 05일
윤계 선생 순절비 미디어 정보

윤계 선생 순절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에 있는 조선후기 병자호란 당시 전사한 남양부사 윤계 관련 추모비.

개설

1979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조선 중기의 문신 남양 부사 윤계의 순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추모비다.

내용

윤계(尹棨, 1583~1636)의 본관은 남원(南原)으로, 삼학사(三學士)의 한 사람인 윤집(尹集)의 형이다. 남양 부사(南陽府使) 재임 시에 충청도 보은(報恩)에 용무가 있어 갔다가 병자호란의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와 군비를 정비하려고 했다. 그러나 적의 기습을 받고 잡혀가서 끝까지 항거하다 참살되었다.

순절비는 총높이 198㎝, 비 높이 178㎝, 너비 75㎝, 두께 23㎝이다. 비신(碑身)은 대리석, 대석(臺石)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복련문(覆蓮文)이 조각되어 있다.

비문은 송시열(宋時烈)이 글을 짓고 송준길(宋浚吉)이 글씨를 썼으며 전액(篆額)은 민유중(閔維重)이 썼다. 전액은 ‘부사증참판공순절비(府使贈參判公殉節碑)’로 되어 있으며 비문 끝에 ‘부후삼십삼년무신장지일(夫後三十三年戊申長至日)’이라는 연기(年記)가 있어 비의 건립연대가 1668년(현종 9)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 『경기문화재대관』(경기도, 1990)

  • - 『화성군지』(화성군 편저, 1990)

  • - 국가유산청(www.khs.go.kr)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