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참지의정부사, 대사헌,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다시 기용되어 형조정랑이 되었다. 그러나 중방(重房)의 무신들이 문신을 멸시하자 이에 항거하다가 파직되었다. 1392년(공양왕 4) 이성계(李成桂)가 실권을 잡자 병조정랑 겸 도평의사사경력사도사에 복직되었다. 그 해 이성계 추대에 참여해 개국공신 3등으로 개성소윤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형조의랑에 이어 대사성·좌산기상시로서 상서소윤(尙瑞少尹)을 겸하고 명성군(溟城君)에 봉해졌다. 태종 초기에 충청도관찰출척사·예문관제학·동북면도순문사·동북면도순문찰리사 겸 병마도절제사 겸 영흥부윤 등을 역임하였다. 1404년(태종 4) 참지의정부사로서 대사헌에 올랐다.
다음 해 노비변정도감제조와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하고, 1406년에 계림부윤·경상도관찰출척사를 지냈다. 다음 해 다시 참지의정부사로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08년에 형조판서가 되었다가 1410년 파직되었다.
성격이 강직해 직언을 서슴지 않았으며, 서리를 다스리는 데에 능숙해 관직을 맡을 때마다 칭송을 받았다. 1405년에는 앞서 1398년(태조 7)의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鄭道傳)과 더불어 왕자 방석(芳碩)을 옹립했다는 혐의로 탄핵을 받은 일이 있다. 시호는 정평(定平)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태조실록(太祖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용재총화(慵齋叢話)』
- 『거문절공유사(車文節公遺事)』
- 『해동잡록(海東雜錄)』
- 「정도전(鄭道傳)의 인간(人間)과 사회사상(社會思想)」(한영우, 『진단학보』50,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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