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2년(현종 13)에 마련된 동궁관의 직제에는 보이지 않으며, 1068년(문종 22)에 태사(大師)·태부(大傅)·태보(大保) 등과 첨사부(詹事府)가 설치되어, 동궁관이 정비될 때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정원은 1인이다. 그 뒤 1098년(숙종 3)에 동궁의 요속(僚屬)을 둘 때에도 문종관제의 예에 따라 설치되었으며, 1116년(예종 11) 동궁관이 축소되면서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 백관지 역주』(박용운, 신서원, 2009.)
「고려시대 동궁 4품 이하 관직의 제수와 녹봉」(이진한, 홍완표, 『한경대논문집』3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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