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세응(世應). 호는 유계(柳溪) 또는 정눌거사(精訥居士). 봉화(奉化)의 법전리(法田里)에서 출생. 아버지는 강필경(姜必敬),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권사민(權思敏)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잠심하여 제자(諸子)와 백가(百家)까지 탐독하여 문장이 성취되었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를 잘 섬겼다.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과거의 뜻을 버리고 오직 위기(爲己)하는 공부에 전념했다. 1836년(헌종 2) 영남지방에 흉년이 들어 기아자가 속출하자 가재를 털어 친척의 곤궁한 사람을 구제하고 자신도 굶주려서 몸이 여위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1841년 성재정사(省齋精舍)를 중수하여 지방 수재들의 교육에 힘썼다. 1852년(철종 3)과 1861년에 지방관리가 추천하여 부름을 받았으나 나가지 않았고, 1855년 윤선거(尹宣擧)와 아들 윤증(尹拯)의 추탈(追奪)사건에 항의하여 소를 올려 저지운동을 펼쳤고, 1866년(고종 3) 병인양요(丙寅洋擾) 때는 척사(斥邪)할 것을 호소했다.
평생에 실행하지 않고 말만하는 인사를 싫어했고, 모든 행동에는 공경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사람을 지도함에 있어서도 실천을 앞세우고 문장을 뒤로 미루었다. 저서로는 『유계집(柳溪集)』 8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