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중업(仲業). 호는 매서(梅墅) 또는 청서(靑墅). 아버지는 사인(舍人) 강극성(姜克誠)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치운(成致雲)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한 번 본 것은 평생동안 잊지 아니하였다. 글씨를 잘 써 당시에 명필로 꼽혔다.
1570년(선조 3)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서 학문을 닦았다. 1572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에 등용되었다. 그 뒤 성균관 학유가 되었으나 윗사람들과 의견이 맞지 아니하여 물러났다.
당시 학자들과 친교가 많았으며, 특히 성혼(成渾)과는 의기가 서로 맞아서 사이가 두터웠다. 아버지의 상을 당하고 복을 마치자마자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슬픔이 지나쳐 여막(廬幕)에서 병사하였다. 의(醫) · 복(卜) 등 다방면에 학식이 깊었으며, 특히 역학(易學)에 밝아서 자기의 죽음을 예측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