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군은 봉토지름 15m, 높이 1m 정도의 비교적 큰 봉토분들로서 낮은 야산의 능선을 따라 조영되어 있다.
이 중 능선 끝에 위치한 구덩식 돌덧널무덤 2기(제1·2호분)와 널무덤 1기(제3호분)가 국도를 넓히기 위한 공사 중에 파괴되어 1984년국립진주박물관에 의해 긴급 조사되었다.
구덩식 돌덧널은 뚜껑돌이 갖추어져 있는 형식으로 아래쪽은 강돌을, 위쪽은 깬돌을 사용해서 8∼10단으로 쌓아올렸다. 바닥은 전면에 잔자갈을 깔아놓은 것(1호분)과 껴묻거리를 놓는 공간에만 판돌을 편 것(제2호분)이 있다.
그러나 제1·2호분 모두 돌덧널의 네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하여 모죽은 네모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강돌과 깬돌로 돌덧널을 축조하고, 또 네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예는 인근 지역인 함양 백천리와 상백리, 남원 월산리고분 등에서도 보여 서부 가야지역 고분연구의 한 기준이 되고 있다.
널무덤은 파괴가 심해 전체 형태를 알 수 없었으나 구덩이를 판 뒤 별다른 시설을 하지 않고 널을 안치한 듯하다. 널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이 고분군에서는 뚜껑목항아리·굽다리목항아리·굽다리접시·연질의 깊은바리·뚜껑·그릇받침 등의 토기류와 재갈·발걸이·살촉·투겁창·손칼 등의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이 유물들은 고령·합천·남원 등지의 가야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과 대체로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일부 토기의 형태는 위 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 거창 지역의 특징으로서 언급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거창 지역에서는 세발토기와 단지 등 백제지역의 전형적인 토기들도 출토되어 당시 거창 지역의 정치·문화적인 위치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돌덧널무덤의 조영방법과 출토유물로 볼 때 고분의 조영연대는 5세기 후반∼6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