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공양왕릉은 공양왕과 순비(順妃) 노씨의 무덤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이다. 현재는 구릉의 경사면에 3단으로 조성되어 있다. 최상단에는 2개의 봉분과 각 1개씩의 혼유석과 비석이 배치되어 있다.
제2단에는 능역의 중심축 선에 맞추어 장명등(長明燈)이 서 있고, 그 좌우에 크고 작은 2쌍의 석인상(石人像)이 마주 보고 서 있다. 장명등 앞에는 석수(石獸)가 남쪽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그 앞에 난간 동자주(童子柱)가 놓여 있다.
제3단은 2단보다 3m 정도 낮게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는 능역의 중심축 선에 맞추어 정자각이 세워졌을 것이나 지금은 없어진 상태이다. 이와 같은 석물의 배치는 고려왕릉의 상설 제도(象設制度)에 어긋나는 것이다.
봉분 주위에 배치되는 석호와 봉분 가장자리를 따라 두르는 난간의 동자주가 장명등 앞쪽에 배치되어 있음은 후대 보수 때 재배치한 것이다. 매장 주체부는 고려에서 조선 전기까지 이어진 앞트기식 석실로 판단된다.
공양왕릉은 경기도 고양시와 강원도 삼척시 두 곳에 남아 있다. 고양의 공양왕릉은 『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조선시대 문헌에 기록으로 남아 있으나, 삼척의 공양왕릉(강원도 기념물)은 민간에 구전되어 온 것이다.
한 사람의 무덤이 두 곳에 존재하는 것은 공양왕의 죽음이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며, 고려왕조의 마지막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공양왕릉의 완전한 복원을 위해 두 곳 모두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능역 및 석실의 구조를 이해하고 왕릉의 역사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