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 고봉산(206.3m)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잔구성 구릉의 남서쪽 사면에 입지한다.
더부골 고분군(1)은 능선 경사 방향을 따라 1~2m의 간격을 두고 66기의 무덤이 밀집하여 분포한다. 무덤의 규모는 길이 2m, 폭 0.7m 내외이다. 이 가운데 40기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파악되며, 무덤군의 중심 시기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초기로 여겨진다. 무덤에서는 대부분 관못이 출토되어 목관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무덤 전면에 고려시대 상위 계층의 묘제에서 보이는 묘역 시설인 3단의 석단(石段)이 간략화되어 설치된 경우도 확인된다. 부장품으로는 청자와 백자 대접, 토기 호, 청동 발과 합, 청동 숟가락과 젓가락, 구슬, 동전, 철제 낫[鐵鎌]과 판상형철기(板狀形鐵器) 등이 출토되었다. 대부분 실제 사용했던 생활용품이며 목관과 묘광 사이 또는 목관 밑에 부장되었다. 이 유적은 33기의 널무덤에 요갱(腰坑: 무덤 바닥 중앙 부분의 설치된 작은 구덩이)이 조성된 것이 특징이다. 요갱은 주로 무덤 바닥 중앙에 시설되었으며 이 가운데 상당수에는 철제 낫 또는 판상형철기가 매납되었다.
더부골 고분군(2)에서는 돌방무덤과 돌덧널무덤 각 1기와, 조선시대 널무덤과 회곽묘 각 1기가 조사되었다. 돌방무덤과 돌덧널무덤은 파괴되어 조성 시기를 분명하게 파악하기 어려운데, 통일신라~고려시대로 추정된다. 조사 지역에서는 부장품으로 추정되는 조선시대 백자와 토기류가 상당수 출토되었다. 유구는 대부분 파괴되었고 출토된 유물도 대부분 유구와 관련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발굴되었다. 이 일대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도굴이 행해졌고 이로 인해 무덤이 파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적이 이미 심하게 훼손되어 정확한 편년이나 성격을 알 수 없지만 고려 전기부터 조선 말까지 분묘가 조성된 지역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 석렬 유구와 구덩이 유구, 온돌 주거지 등이 조사되었는데 석렬 유구와 구덩이 유구에서는 청동 칼과 철제 칼, 청동 방울 등이 출토되었다. 청동 유물은 형태로 보아 실용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기보다 의례적인 용구로 여겨진다.
무덤군이 있던 곳은 발굴 이후 택지 개발이 진행되고 현재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어 유적의 자취는 남아 있지 않다.
고양 일산동 더부골 고분군은 고려조선시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 널무덤이 다수를 차지한다. 무덤의 배치와 분포에서 일정한 무덤의 조영의식(造營意識)이 보인다. 부장품 매납 방식도 생전의 생활용품들을 널과 구덩이 벽면 사이 또는 요갱에 부장하는 등 일정한 정형성을 보이고 있어 당시 매장 풍습을 추정할 수 있다. 특징적인 것은 다수의 요갱이 확인된다는 점이다. 요갱은 한반도에서는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 널무덤에서 처음 확인되는 시설로 고려 · 조선시대 무덤에도 나타난다. 더부골 고분군은 요갱의 전통이 고려조선시대까지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주고, 시대별 묘제의 양상을 살펴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