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9년(목종 12) 김치양(金致陽)의 난 때 감찰어사로 채충순(蔡忠順)과 최항(崔沆)에게 보내어 난을 예고하고, 후사를 이성(異姓)이 아닌 태조의 손(孫)으로 정할 것을 의논하였다.
그뒤 거란이 재차 침입하자 중군판관(中軍判官)으로 참전하였으나 패하여 남으로 달아났다. 현종이 양주에 행차할 때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郎)으로 하공진(河拱辰)과 함께 표(表)를 받들고, 거란 진영에 가서 화의를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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