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을 비롯한 각 지방의 대대단위의 부대에 두었다. 연대본부에는 부교(副校) 3인, 곡호수(曲號手) 30인, 고수(鼓手) 30인씩이 배치되었고, 대대에는 부교 1인, 곡호수 10인, 고수 10인이 배치되어 구성되었다.
서양식 군대 훈련방법의 채용으로 인한 별기군(別技軍) 창설 이후 일본의 고대(鼓隊) 혹은 고적대(鼓笛隊)를 모방하여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곡호수나 고수들이 어떠한 악기를 연주하였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대개 나발과 북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본격적 서양식 군악대의 창설을 유도한 전 과정으로 과도기적인 성격을 지닌 악대였다. 처음의 훈련과 의식은 프랑스식이나 러시아식을 따랐으며, 이와 같은 새로운 의식은 여러 사람의 시선을 끌었으며, 이러한 모습은 서울지방의 휘모리잡가 중 하나인 「병정타령」의 노랫말에도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