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9년(혜공왕 15) 4월 혜공왕은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김유신의 무덤으로부터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능으로 건너갔는데, 그 능 속에서 울며 슬피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는 말을 들었다.
그 후 두려워하여 대신(大臣) 김경신(金敬信)을 보내어 혼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내게 하고, 취선사(鷲仙寺)에 전(田) 30결(結)을 바쳐 명복을 빌게 하였다고 한다. 그 뒤 취선사에서는 그 토지를 재원으로 하여 공덕보를 설치, 운영하였다. → 보(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