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면적 2.628㎡. 1982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동국여지승람≫에 서혈사는 망월산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산이름과 절터이름이 일치되고 있다.
1927년 이 절터에 대한 조사가 부분적으로 이루어져 ‘西穴寺’라고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되기도 했고, 같은해에 이곳에서 석불(石佛) 3구가 발견되어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그 뒤 1969·1970년 두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에 의해 남아 있는 절터의 규모가 밝혀지게 되었다.
금당터[金堂址]는 동서 10m, 남북 8m의 기단 흔적만 남아 있고 탑이 있던 곳에는 한 변의 길이가 6m, 높이 1m 정도인 기단의 적심석(積心石 : 기단을 튼튼히 하기 위해 잡석과 흙을 섞어 만드는 경우, 또는 기둥을 받치는 초석을 놓기 위해 돌을 층층이 쌓거나 적당히 놓아 기초를 마련한 것을 말함.)만 남아 있어 조사 결과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밝혀지게 되었으나 기단토층 및 출토유물 가운데는 백제양식을 갖춘 것이 있어 이 절터는 백제시대에 작은 규모로 운영되어 오다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본격적인 가람(伽藍)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발견되어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3구의 석불좌상 가운데 2구는 머리와 대좌의 일부가 결손되었으나 1구는 완전하며 이 불상들은 만들어진 양식이 모두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인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 중 완전한 것은 공주 서혈사지 석조여래좌상으로 198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