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은 대전광역시 · 세종특별자치시, 서쪽은 예산군 · 청양군, 남쪽은 계룡시 · 논산시 · 부여군, 북쪽은 천안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6°53′∼127°17′, 북위 36°16′∼36°40′에 위치한다. 면적은 864.29㎢이고, 인구는 11만 1261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9개 면, 6개 행정동(27개 법정동), 245개 행정리(161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공주시 봉황동에 있다.
북쪽과 남쪽은 산지를 이루고 중앙부의 하천유역에는 평야가 전개된다.
북쪽에는 차령산맥이 북동에서 서남으로 이어져 국사봉(國士峰, 402m) · 차령(車嶺, 200m) · 무성산(茂盛山, 613m) · 금계산(金鷄山, 575m) 등의 여러 산을 형성하고 있다. 동남부에는 계룡산(鷄龍山, 845m)이 우뚝 솟아 있다. 그리고 곳곳에 200m 내외의 구릉이 분포한다.
전북특별자치도 무주 · 장수 부근에서 발원한 금강은 시의 중앙부를 대체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관류하면서, 많은 지류와 합류하고 양안에 비옥한 범람원을 이루어 놓았다.
대개의 지류는 능선들의 방향과 평행하게 흘러 금강과 거의 직교하여 유입하나, 유구천(維鳩川) · 대교천(大橋川) · 용성천(龍城川) · 구곡천(九曲川) 등은 사행천이다.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로는 노성천(魯城川)의 운궁저수지(雲弓貯水池), 도천(道川)의 한천저수지(韓川貯水池) 등이 있다.
지질은 선캄브리아기에 속하는 변성암류와 연대미상의 편마상화강암류, 중생대의 화강암류, 경상계 퇴적암류 및 안산암 · 반암류 · 염기성암맥 · 산성암맥으로 되어 있다. 토양은 금강을 경계로 크게 양분할 수 있는데, 금강 북쪽의 토양은 토층이 깊은 갈색 또는 담황갈색의 양토 및 세식양토(細埴壤土)이다. 남쪽 계룡면 일대의 토양은 암색의 양토 · 식양토(埴壤土)이고, 하층으로 갈수록 사토(砂土)이다.
시의 외곽지역이 산지여서 인근 지방과 연결되는 도로에 많은 고개가 있다. 신풍면과 청양의 경계에는 실운리고개 · 솔치고개, 유구읍과 아산 사이에는 각홀고개, 정안면과 천안을 잇는 장고개 · 개치고개 · 이수원고개, 유구읍과 예산을 잇는 차령고개가 있다. 그리고 정안면에서 국사봉에 이르는 데재고개 · 사기소고개 등이 있다.
내륙지역에 위치하므로 기후는 한서의 차가 큰 대륙성기후를 나타낸다. 연평균 기온 13.9℃, 1월 평균기온 -0.5℃, 8월 평균기온 25.9℃이고, 연 강수량은 1,466㎜로 비교적 많은 편이다.
구석기유적은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발굴 조사된 장기면 석장리 유적을 비롯하여, 반포면 마암리의 속칭 용굴과 장기면 금암리 등지에서 발견되었다.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고인돌이 탄천면 남산리, 반포면 국곡리, 장기면 은룡리 등 금강변에 산재해 있다.
이 밖에 선돌이 장기면 평기리, 반포면 상신리 · 원봉리, 유구읍 입석리 등에 분포해 있다. 독무덤이 탄천면 송학리와 남산리에 있는데, 남산리에서는 민무늬토기 · 간돌칼 · 돌화살촉도 발견되었으며, 장기면 봉안리에서는 동과(銅戈) · 동검(銅劍) 등이 발견되었다. 공주는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불운국(不雲國)이 이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하지 않다.
공주가 역사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백제의 웅진천도가 이루어지면서부터이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남침으로 백제의 한성(漢城)이 점령당하고 개로왕(蓋鹵王)이 피살되자 왕제 상좌평(上佐平) 여도(餘都)가 즉위해 문주왕(文周王)이 되었는데, 문주왕은 목협만치(木劦滿致)와 조미걸취(祖彌桀取)의 도움으로 도읍을 웅천(熊川) 즉 공주(公州)로 옮기고 고구려의 침략을 대비하기 위해 주변에 많은 산성을 쌓았다.
국력을 회복한 성왕(聖王)은 산으로 둘러싸여 방어에는 유리했지만, 고립되고 협소한 공주를 떠나 평야지대인 사비(泗沘)로 천도하였다. 사비로 천도 후 지방통치조직이 방(方) · 군(郡) · 성(城: 縣)제로 바뀌면서 공주에는 북방이 설치되고 달솔(達率)이 방령(方領)에 임명되어 예하 군현을 관장하였다.
신라가 당과 함께 백제를 공격하자 의자왕(義慈王)은 왕자 부여융(夫餘隆)과 웅진으로 피난했다가 항복하였다(660년). 신라와 함께 백제를 점령한 당은 공주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두어 군병을 주둔시켰으나 당장 소정방이 의자왕과 백제의 왕족을 데리고 당으로 돌아감으로써 폐지되었다.
백제를 점령한 신라는 686년(신문왕 6)에 웅천주(熊川州)를 설치하고 도독(都督)을 파견하였다. 그리고 757년(경덕왕 16)에는 웅천주를 웅주(熊州: 公州)로 고쳐 니산(尼山)과 신풍현(神豊縣)을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822년(헌덕왕 14)에 무열왕계의 김헌창(金憲昌)이 웅진도독으로 있다가 웅주를 근거로 반란을 일으켜 국호를 장안(長安), 연호를 경운(慶雲)이라 하여 충청도 일대에 세력을 떨쳤으나 왕군에 진압되었다.
940년(태조 23)에 공주(公州)로 개칭하여 지금의 읍호를 갖게 되었는데 별호는 회도(懷道)였다. 983년(성종 2)에 전국에 12목(牧)을 설치하면서 공주목이 되었다. 그리고 995년(성종 14)에 절도사를 두어 안절군(安節軍)이라 하여 하남도(下南道)에 속하게 하였다.
1018년(현종 9)의 행정구역의 변경에 따라 공주목은 주로 강등되어 56지주군(知州郡) 중의 하나로 지주군사(知州郡事)가 파견되었다.
그 뒤 공주는 계수관으로 4군 7현을 거느렸다. 1341년(충혜왕 2)에는 원나라 평장(平章)인 활활적(闊闊赤)의 처 경화옹주(敬和翁主)의 외향이라 하여 다시 공주목으로 승격시켰다.
1172년(명종 2)에 공주 명학소(鳴鶴所)의 망이 · 망소이 등이 신분해방을 목표로 난을 일으켜 공주를 점령하자 조정에서 회유책으로 명학소를 충순현(忠順縣)으로 승격해주었다가 탄압하자, 재차 봉기하여 충청도 일대로 확대되기도 하였다.
고려 말에는 왜구의 침입이 잦아 민심이 불안하였다. 1375년(우왕 3) 왜구가 부여를 거쳐 공주를 침입했을 때 공주목사인 김사혁(金斯革)이 이를 맞아 싸웠으나 패배하여 공주가 함락되었다. 1376년에 왜구가 공주와 신풍현에 침입했고, 또 왜구가 유성으로 거처 계룡산에 들어온 것을 양광도 원수 김사혁이 패퇴시켰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 말의 행정구역명을 계승했으므로 큰 변화는 없었다. 조선 초 이 지역의 인물로는 의당면 월곡리 출신인 김종서(金宗瑞)가 있다. 그는 육진개척 및 『고려사』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장기면 대교리에는 그의 묘가 있으며, 계룡산 동학사에는 그를 비롯하여, 수양대군에게 화를 입은 인물을 모신 숙모전(肅慕殿)이 있다.
세조 때에는 진관체제 실시에 따라 공주에도 임천(林川) · 한산(韓山) 등의 2개 군과 전의(全義) · 정산(定山) · 은진(恩津) · 회덕(懷德) · 진잠(鎭岑) · 연산(連山) · 이산(尼山) · 부여(扶餘) · 석성(石城) · 연기(燕岐) 등의 10현을 두고, 공주에는 목사(牧使) · 판관(判官) · 교수(敎授) 각 1명씩을 두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당시 공주목의 호구는 2,167호에 1만 49명이었다 한다. 1598년(선조 31) 충청감영이 공주로 이전되어 호서 지방의 4개 목, 35개 현을 관할하여 호서의 중심지가 되었다. 1624년(인조 2)에 이괄의 난으로 인조가 공주로 피난을 오기도 했으며, 1646년에 유탁(柳濯)의 난으로 공주가 공주현으로 강등되었다가 곧 환원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 공주목은 추로지향(鄒魯之鄕)으로 김장생(金長生) · 김집(金集) · 송시열(宋時烈) · 송준길(宋浚吉) · 이유태(李惟泰) · 권시(權諰) · 윤증(尹拯) · 유계(兪棨) 등 조선 후기 정계와 학계를 주름잡은 유명한 인물을 많이 배출하였다.
1894년에는 북상하던 동학군이 능치 · 우금치에서 관군 및 일본군과 싸워 패하였다. 1895년(고종 23) 충청도가 충청남북도로 양분되면서 공주군으로 개칭되고 공주부가 신설되어 충청남도의 수부로 관찰사가 주재하면서 인근 27개 군을 관할하였다. 1911년 일제의 강점 후에도 충청남도의 도청소재지로서 종전의 관찰사를 도의 장관으로 개칭하였다.
1914년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13개 읍 · 면으로 축소 개편하였다. 1931년 공주면이 읍으로 승격했고, 1932년에는 경부선철도의 개통과 함께 도청이 대전으로 이전되고 군청소재지로 격하되면서 공주의 발전이 정체되었다.
1945년 해방 후에도 행정구역의 명칭만 일부 변경되었을 뿐, 1개 읍, 11개 면을 관할하였다. 1986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공주군에서 공주읍이 공주시로 승격되어 8개 행정동으로 개편되었고, 공주군은 공주읍을 제외한 11개 면으로 개편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통합에 따라 공주시와 공주군이 통합되어 새로운 공주시가 되었다. 1998년에는 공주시 과 · 소동 통폐합 추진에 따라 1개 읍, 10개 면, 6개 동, 277개 이로 조정되었고, 1999년에 2개 리가 추가되어 2004년에는 1개 읍, 10개 면, 6개 동, 279개 리가 되었다.
2012년 장기면의 금암리 · 은용리 · 산학리 · 봉안리 · 도계리 · 하봉리 · 송정리 · 송문리 · 평기리 · 대교리가 세종특별자치시에 편입되면서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으로 행정구역 명칭이 변경되었다. 구 장기면 동현리 · 송선리 · 장암리는 공주시 동현동 · 송선동 · 장암동으로 변경되었다. 또한 2012년 공주시 의당면의 태산리 · 용암리 · 송학리 · 용현리 · 송정리가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으로 편입되었으며, 공주시 반포면의 원봉리 · 도남리 · 성강리 · 국곡리 · 봉암리가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으로 편입되었다.
장기면의 공주 석장리 유적(사적, 1990년 지정)은 남한에서 최초로 발견 · 조사된 구석기 유적으로 이름이 높다. 신석기시대 유적은 아직 발견된 바 없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는 반포면 국곡리, 사곡면 호계리, 탄천면 성리, 이인면 초봉리에서 고인돌이 발견되었으며, 탄천면 남산리 · 가척리, 반포면 상신리 · 국곡리, 이인면 신흥리, 장기면 당암리, 의당면 도신리, 우성면 보흥리, 계룡면 향지리에서 선돌이 발견되었다.
장기면 봉안리에서는 청동검과 창이 발견된 바 있으며, 정안면 장원리에서는 무문토기 산포지유적이 발견되었다. 이 밖에 탄천면 송학리에 청동기시대 옹관묘, 남산리에 청동기시대의 옹관묘 및 석관묘 · 토광묘 유적이 있다.
원삼국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유적으로 탄천면 장선리의 공주 장선리 유적(사적, 2001년 지정)이 있다.
백제시대 유적이 공주시내에 밀집되어 분포하고 있다. 공주 정지산에서는 환호와 함께 금성동의 공주 송산리 고분군과 관련이 있는 특수한 건물지 유적이 조사되었다.
백제시대 고분유적으로는 송산리 고분군을 비롯하여, 웅진동 · 박산소 · 오곡동 · 금학동 · 신기동 · 보통골 · 능치 · 월성산 · 우금치 · 남산, 이인면 구암리, 탄천면 남산리 · 송학리, 장기면 하봉리 · 봉안리, 반포면 국곡리, 신풍면 산정리, 계룡면 점골, 우성면 동대리 · 장승백이 · 안골 · 대성리 유적이 있다.
금성동의 공주 무령왕릉(사적, 1963년 지정)에는 백제시대의 왕릉급 무덤이 있는데 1호 ·4호 ·6호 ·29호(궁륭상 석실분), 2호 ·3호 ·5호 ·7호(횡혈식 석실분), 6호(전축분), 8호(수혈식 석실) 등 여러 형식이 있다. 무령왕릉은 전축분으로 그 안에서 많은 유물이 나왔다.
중동의 국립공주박물관에는 일괄 1974년 국보로 지정된 무령왕 금제관식, 무령왕비 금제관식, 무령왕 금귀걸이, 무령왕비 금귀걸이, 무령왕비 금목걸이, 무령왕 금제 뒤꽂이, 무령왕비 팔찌,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무령왕릉 석수, 무령왕릉 지석, 무령왕릉 베개, 무령왕 발받침이 있다.
신기동과 탄천면 송학리에서는 고려시대의 석실묘도 확인되었다.
가마유적으로는 이인면 검상리 · 신흥리, 유구읍 구계리 · 반포면 상신리 · 송곡리, 의당면 도신리의 기와가마를 비롯하여, 정안면 어물리, 의당면 중흥리 · 가산리 · 도신리, 반포면 하신리 · 온천리 · 송곡리 유적과 공주 학봉리 요지(사적, 1990년 지정) 유구읍 입석리의 분청사기 가마가 있다.
또한, 백자가마로는 반포면 봉곡리 · 학봉리 · 온천리 · 송곡리, 신풍면 쌍대리, 의당면 덕학리 · 도신리 유적이 있다. 그리고 기타 성격이 밝혀지지 않은 가마로 우성면 보흥리, 유구읍 명곡리, 장기면 금암리, 계룡면 중장리 유적이 있다. 또 토기가마로 정안면 월산리, 반포면 온천리, 의당면 중흥리, 신풍면 동원리 유적이 있다.
야철지로는 계룡면 중장리, 정안면 어물리 유적이 있다.
산성으로는 산성동의 공주 공산성(사적, 1963년 지정)을 비롯하여, 한산성 · 공주 옥녀봉성(충청남도 기념물, 1963년 지정 제99호), 정안면 광정리 산성, 우성면 무성산성 · 단지리 산성 · 옥성리 산성, 의당면 오인리 산성 · 율정리 산성, 장기면 평기리 산성 · 은룡리 산성, 계룡면 양화산성 · 중장리 산성, 이인면 이인산성 · 용성리 산성, 신풍면 신풍산성, 반포면 봉곡리 산성이 있다.
사지로는 공주 시내의 대통사지와 공주 수원사지(충청남도 기념물, 1982년 지정), 공주 서혈사지(보물, 1989년 지정) · 동혈사지 · 정지사지 · 소학리 사지 · 웅진동 사지, 공주 남혈사지(충청남도 기념물, 1982년 지정) · 금학동 사지, 이인면 단미리의 공주 주미사지(충청남도 기념물, 1982년 지정)가 있다.
이 외에도 반포면 상신리에 공주 구룡사지(충청남도 기념물, 1982년 지정) · 청량사지 · 봉곡리 사지, 사곡면의 상원사지 · 신영리 사지, 우성면 옥성리 사지, 장기면의 송문리 사지 · 산학리 사지, 탄천면의 미암사지 · 안영리 사지 · 정티리 사지 · 청림사지, 유구읍의 탑곡리 사지, 이인면의 신흥리 사지, 신풍면의 쌍대리 사지 · 동원리 사지, 의당면의 두만리 사지 등이 있다.
불교 유산으로는 사곡면 운암리의 마곡사 경내에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1∼7(보물, 1963년 지정) · 마곡사 대웅보전(보물, 1984년 지정) · 마곡사 대광보전(보물, 1984년 지정) · 마곡사 영산전(보물, 1984년 지정) · 마곡사 심검당 및 고방 · 마곡사 오층석탑(보물, 1984년 지정) · 마곡사 동제은입사향로· 마곡사 동종· 마곡사 천왕문 · 마곡사 국사당 · 마곡사 명부전 · 마곡사 응진전 · 마곡사 해탈문 · 마곡사 석가모니불괘불탱(보물, 1997년 지정) 등이 있다. 마곡사 심검당 및 고방은 1991년, 마곡사 동제은입사향로는 1973년, 마곡사 동종은 1976년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마곡사 천왕문, 마곡사 국사당, 마곡사 명부전, 마곡사 응진전, 마곡사 해탈문은 전부 1984년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계룡면 중장리의 갑사 경내에는 갑사 삼신불괘불탱(국보, 1997년 지정), 갑사 동종(보물, 1968년 지정) · 월인석보목판(보물, 1974년 지정) · 갑사 철당간(보물, 1963년 지정) · 갑사 승탑(보물, 1963년 지정) · 갑사 대웅전(보물, 1985년 지정) · 갑사 강당(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 · 갑사 대적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84년 지정) · 갑사 석조약사여래입상(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 갑사 석조보살입상(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 갑사 사적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 갑사 소조삼세불(충청남도 유형문화재, 2001년 지정) · 갑사 표충원(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 갑사 삼성각(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 갑사 팔상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2011년 지정) · 갑사 중 사자암지 삼층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 영규대사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가 있다.
또한 반포면 양화리에 신원사 대웅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8년 지정)이 있고, 학봉리의 동학사 경내에는 동학사 삼성각(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 동학사 삼층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 삼은각(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 숙모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이 있고, 금성동에는 영은사 대웅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 영은사 목조관음보살좌상(충청남도 유형문화재, 2001년 지정), 영은사 아미타후불탱화(충청남도 문화재자료, 2001년 지정) · 영은사 칠성탱화(충청남도 문화재자료, 2001년 지정)가 있다. 이 밖에 계룡면 중장리에 천진보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중동의 국립공주박물관에는 공주 의당 금동보살입상(국보, 1989년 지정) · 공주 중동 석조(보물, 1963년 지정) · 공주 반죽동 석조(보물, 1963년 지정) · 공주 반죽동 당간지주(보물, 1963년 지) · 공주 서혈사지 석조여래좌상(보물, 1989년 지정)이 있다.
이 밖에도 반포면 학봉리에 청량사지 오층석탑(보물, 1998년 지정), 청량사지 칠층석탑(보물, 1998년 지정), 양화리에 계룡산 중악단(보물, 1999년 지정) · 신원사 오층석탑(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신원사 노사나불괘불탱(국보, 1997년 지정) 신풍면의 공주 동원리 석탑(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반포면의 공주 상신리 당간지주(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 탄천면의 공주 가척리 석탑(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 등이 있다.
그리고 산성동 공산성 안의 공산성 진남루(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 공산성 쌍수정(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금성동의 공북루 · 금서루 · 임류각지 · 만아루지 · 장대지 · 공주 공산성 연지(충청남도 기념물, 1982년 지정) · 공산성 광복루(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 쌍수정사적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 명국삼장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등이 있다.
관아건축으로 웅진동의 선화당(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80년 지정) 제92호) · 포정사 문루(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80년 지정), 공주 동헌이 있다.
유교 유산으로는 교동에 공주향교(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8년 지정), 반포면 공암리에 충현서원(충청남도 문화재자료, 2011년 지정) · 충현서원 유적(충청남도 기념물, 1984년 지정) 및 명탄서원과 용문서원이 있다.
사우로는 계룡면 화은리에 화산영당(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유평리에 충헌공 윤전 사우(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6년 지정), 임진왜란 때의 무신 유형장군을 모신 충렬사, 반포면 학봉리에 계룡산 초혼각지(충청남도 기념물, 1977년 지정), 유구읍 추계리에 고간원지(충청남도 기념물, 1984년 지정), 장기면 월성리에 충절사(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등이 있다.
옥룡동에 초려 이유태 유고(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89년 지정) · 이유태선생 유고(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8년 지정), 초려 이유태의 유물(충청남도 민속문화재, 1984년 지정) 등이 있다.
이인면 오룡리에 숭선군묘(충청남도 기념물, 1976년 지정), 계룡면 유평리에 영규대사묘(충청남도 기념물, 1977년 지정), 우성면의 공주 귀산리 만경노씨 삼의사 생가지(충청남도 기념물, 1979년 지정)가 있다. 이인면의 공주 오룡리 귀부(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국립공주박물관의 덕천군묘출토 분청이부호(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8년 지정), 이인면 만수리의 연평 부원군 신도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소학동에 공주 소학리 효자향덕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가 있다. 이외에도 태봉동의 공주 숙종대왕 태실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92년 지정), 목사 김효성의 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등이 있다.
금학동 공주 우금치전적(사적, 1994년 지정), 정안면 광정리에 김옥균선생 유허(충청남도 기념물, 1976년 지정)가 있다.
무형유산으로는 계룡 백일주, 공주 탄천장승제, 공주 봉현리 상여소리가 있다. 계룡 백일주는 1989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고, 공주 탄천장승제는 1989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공주 봉현리 상여소리는 1997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공주는 오랜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지닌 교육도시로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중추적 행정의 거점으로서 향교와 서원 · 서당 등의 설립을 통하여 유교 중심의 학교교육이 활발하게 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선 초기 웅진동에 공주향교가 설립되어 많은 유생을 교육시켰는데, 1623년에 교동으로 이전했다.
1490년(성종 21년) 월송동에 명탄서원, 1581년(선조 14년) 반포면에 충현서원, 1629년(인조 7년) 탄천면에 창간서원이 각각 창건되었다. 신교육기관으로는 1898년 심기섭(沈驥燮)이 설립한 공주사립소학교가 최초의 초등교육기관인데 1906년 공주공립보통학교로 개편되어 현재의 중동초등학교가 되었다.
1905년에 미국인 선교사 샤프의 부인 사애리시가 영명학교의 전신인 명선여학당을 설립했는데, 이 학교는 3·1운동 등 민족운동을 전개하면서 현재의 영명중고등학교로 되었다. 다음 해인 1906년에 윌리엄즈 목사에 의해 영명남학당이 설립되었다.
1910년에는 도립공주농림학교가 설립되었는데, 이 학교는 1911년에 예산으로 이전하였다. 1913년 유구에 유구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같은 해 이인면에 사립삼흥학교가 설립되었는데, 이 학교는 1917년 이인공립보통학교로 개편되었다.
1922년에 공주공립고등보통학교와 도립공주사범학교(1929년 폐교), 1928년에는 공주공립고등여학교가 설립되었다. 이어 1933년에 공주공립농업학교, 1938년에 공주여자사범학교가 설립되었다. 1948년에는 도립공주사범대학이 설립되어 1991년에 공주대학교로 개편되었다. 1962년에는 공주교육대학이 설립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9개 교, 중학교 14개 교, 고등학교 10개 교, 특수학교 1개 교 등이 있으며, 공주대학교 · 공주교육대학교 등이 있다. 또한, 충남교원연수원 · 충남운수연수원 · 충남지방공무원연수원 · 국립직업훈련원 등의 국공립교육기관들이 곳곳에 입지해 있다.
그리고 공주도서관 · 공주박물관 · 산림박물관 · 공주민속박물관 및 공주문화원이 있으며, 8월에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10월에는 백제문화제가 개최되고 있다.
이 지방에는 호미씻기 · 기와밟기 · 고니 등의 놀이가 행해진다. 호미씻기놀이는 7월 백중을 전후해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산이나 계곡에 모여, 농악으로 춤과 노래를 즐기는 마을의 놀이이다.
이 때 농사를 제일 잘 지은 집의 머슴을 상머슴으로 뽑아 삿갓을 쓰고 소를 탄 채 마을을 돌게 하며, 그 집 주인은 마을사람들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한다.
기와밟기는 어린이들의 놀이로, 일렬로 손을 잡고 늘어서서 앞사람부터 다음 사람의 팔을 뛰어넘은 뒤에 몸을 앞으로 구부려 늘어서면, 다시 뒷사람부터 한 사람씩 구부린 사람의 등을 넘는 놀이이다.
고니놀이는 일정한 양식의 도표를 그려놓고 그 위에 말을 놓아 상대방의 말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여 승부를 가리는 놀이이다. 도표의 형태에 따라 사발고니 · 강고니 · 네발고니 · 곤질고니 · 장수고니 등이 있다.
산신제 · 동제 · 노신제(路神祭) · 용왕제 · 기우제 등의 동제가 있다. 산신제는 산 위나 산기슭에 신당을 설치하여 제사하며, 동제는 마을 한쪽에 신단을 설치하여 지낸다. 노신제는 사람이 많이 내왕하는 길가에서, 용왕제는 하천변이나 우물 옆에서, 기우제는 산이나 강가에 제물을 진설하여 지낸다.
제관은 마을에서 2∼7명을 선정하게 되는데, 제사 며칠 전부터 금줄을 쳐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하고 붉은 흙을 뿌린다. 제식 중 소지를 할 때는 마을 각 호의 호주 성명을 부르며 종이를 원통형으로 태워 올린다. 제사 비용은 마을사람들이 농악대를 조직하여 집집마다 돌면서 돈과 곡식을 거두어서 충당한다. 제사 후 제물을 마을에 가져와 마을사람들과 같이 나누어 먹는다.
탄천면 송학리 소라실 마을에서는 장승제를 지내는데, 마을의 수호신인 장승의 성적 결합(性的結合)으로 생물의 증식이 이루어져 세화연풍이 되기를 기원한다. 동편 매봉 기슭에 있는 신랑마을과 서편 삼태봉 기슭에 있는 신부마을 주민들은 1월 7일부터 농기를 앞세우고 농악을 치며 쌀을 추렴하여 술을 빚는다.
1월 15일 장승제에 들어가면 양편은 농악을 치며 농기를 중심으로 놀다가, 신부농기가 신랑농기에게 네 번 절하면 답례로 신랑농기가 두 번 절하고 신부농기에 채단을 묶어준다. 날이 저물면 동구다리에서 장승혼례식을 거행하고, 색포(色布)로 신랑장승과 신부장승을 묶어 합궁시켰다가 떼어놓는다.
양편은 각기 동구로 돌아가서 장승과 오릿대를 세워놓고 젯상을 차린 다음, 세화연풍을 기원하는 제를 올린다. 제가 끝나면 마을로 돌아와 동편 신랑마을에서는 씨름을, 서편 신부마을에서는 널을 뛰고 놀다가 다시 두 마을이 하나가 되어 밤이 새도록 즐겁게 논다.
이 지방에는 사찰관련설화 · 효행설화 · 자연물관련전설 · 지명유래전설 및 인간과 동물관계 설화 등이 다양하게 전해내려온다. 이 지방의 역사성을 말해주는 설화로는 「곰나루전설」과 「인절미설화」 등이 있는데, 「곰나루전설」은 지명유래담으로 인간과 곰에 얽힌 이야기이다.
공주 근처 연미산(燕尾山)에 살던 암콤이 나무꾼 한 사람을 잡아다 남편으로 삼아서 자식을 둘이나 낳았다. 세상이 그리워진 나무꾼은 굴을 뛰쳐나와 도망쳤는데, 이를 본 아내곰이 되돌아서지 않으면 자식들을 죽이겠다고 위협하였다. 나무꾼이 끝내 듣지 않자 아내곰은 결국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이 설화는 백제인들이 곰 토템을 가졌던 북방민족의 후예임을 드러내려고 구전시킨 것으로 보이는데, 전에는 구전에 그치지 않고 곰에 대한 제사도 성대히 올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근년에 곰상(像)과 곰사당을 새로 조성해놓았다.
「인절미설화」는 조선 인조 때 이야기로, 이괄(李适)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 파천한 임금에게 임씨(林氏) 성을 가진 사람이 맛있는 떡을 해서 올렸다. 임금이 그 맛을 크게 칭찬하고 임씨 성에 ‘매우 뛰어난 맛’이라는 ‘절미(絶味)’를 붙여서 떡 이름을 ‘임절미’라 한 것이 와음되어 ‘인절미’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도루묵설화」도 이때의 이야기이다.
「동천보전설(銅川洑傳說)」과 「석숭보전설(石崇洑傳說)」은 보에 얽힌 전설이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동천보전설」은 동천에 보를 막기만 하면 터져버려 농민들이 고민하고 있었는데, 오씨(吳氏)가 낚시질하다 잡힌 자라를 놓아 보내자, 자라의 조상이 꿈속에서 보의 위치를 일러주어 그대로 보를 막았더니 큰물이 져도 동천보가 터지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석숭보전설」은 ‘오누이힘내기’설화 유형이다. 남동생은 쇠나막신을 신고 서울을 다녀오고 누이는 보를 쌓는 내기를 하였는데, 아들을 생각한 어머니의 방해로 누이가 패하여 남동생에게 죽고 말았다.
석숭보는 누이의 치열한 정신이 스며 지금도 견고하게 남아 있다. 이 밖에 「장자못설화」 · 「백호를 물리친 노파설화」 · 「동혈사(銅穴寺)와 미암사(米巖寺)의 쌀 나오는 구멍에 관한 설화」등이 전하고 있다.
이 고장에 구전되고 있는 민요는 노동요와 어희요가 중심을 이룬다. 노동요 중 농업노동요는 작업과정마다 있지만, “철뜨럭궁 철뜨럭궁/모한침만 쪘네/빨리 한폭을 찌고/모를 심세.”라는 「모찌기노래」가 가장 현장과 밀착되어 불린다.
벼를 타작하는 노래를 「벼 바심 노래」라 하는데, “에야호-/ 참나무 개상에/ 닭잡고 술먹세/ 저건너 갈미봉에/ 비몰아 들어오네.”라 하여 마지막 두 행은 「육자배기」사설을 이용하고 있다. “어화 농부들아/이내말쌈 들어보소”, “얼널널 상사디어” 등으로 시작하는 「농부가」를 작업과정에서 부르기도 한다.
여성노동에 관련된 민요가 앞서의 농업노동요보다 더 많이 전해지고 다른 지방보다 더욱 애절하게 읊는 것이 특징이다. “날가라네 날가라네 날가라네/ 삼베질쌈 못한다구 날가라네/ 삼베질쌈 못하능건 배우면되지/ 아들딸 못낳능건 어이하나……”는 설움받는 구체적인 이유를 노래하고 내용과 어울리게 아주 느리고 구슬픈 가락으로 부른다.
“우리 어머니가 나를 슬때/ 콩나물을 먹었능가/ 콩콩이도 스럭구나/ 고사리나물을 먹었능가/ 고샅고샅이도 스럭구나…… 미역국을 잡셨능가/ 넌출넌출이도 스럭구나.”라는 노래는 「자탄가」 혹은 「며느리노래」라고도 하는데, 설움을 식물의 특징에 담아내고 있다. 시집살이의 고달픔과 설움에 못이겨서 도망가다 잡혀오는 고난을 노래한 「시집살이노래」/「열둘이 얼러서」등도 있다.
이야기와 함께 전해지는 「남매노래」는 누이동생이 오빠를 원망하는 노래이다. “강실강실 비온끝에/ 시누여 올케여 빠졌구나/ 건지다보니 동생일세/ 동생일랑 젖혀놓고/ 마누라를 건져나보세/ 무정하오 무정하오/ 우리오빠도 무정하오……”라고 하면서 젊은 나이에 죽는 것을 한탄하고 오빠를 원망하는 내용을 극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어희요 계통의 우스개노래가 많이 전해지는데, “쪼그락쪼그락 박첨지/ 흔누데기 이첨지/ 언덕밑에 허첨지/ 장대끝에 장첨지……”라는 「성풀이요」에서는 동음이어, 각운 등을 사용하여 아주 재미있게 풀고 있다. 「다리빼기노래」,「숫자요」 등 아이들의 유희요도 많이 전해지고 있다.
시의 외곽부는 산지가 많지만, 금강과 그 지류유역의 저지대는 대부분 농경지로 이용된다. 농경지는 논 1만 390㏊, 밭 5.496㏊이며, 전체 인구의 약 28%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농가구는 1만 2830가구이고, 가구당 경지면적은 128.9㏊이다. 쌀을 비롯, 보리 · 콩 · 고구마 · 감자 등의 식량작물과 고추 · 참깨 · 들깨 · 표고버섯의 생산량이 많다. 특히, 표고버섯은 충청남도 생산량의 약 35%를 차지한다.
지하자원으로는 유구읍의 광산에서 활석이 연 20t 정도 생산된다. 가내수공업으로는 명주와 면직이 생산되었으나, 현재는 유구읍에서만 겨우 명맥을 유지할 정도이다. 광공업 관계 사업체수가 188개이고, 월평균 광공업 출하액은 121억 1287만원이다.
참고로 1984년도 공주시의 광산물 생산실적을 보면, 활석 2만 734M/T, 활석 40M/T가 전부였고, 1985년의 공주시 광산물 실적 또한 활석 2만 2390M/T, 활석 1,525M/T가 전부였다. 그 후로는 공주시의 광산물 통계를 찾아볼 수 없다. 그만큼 공주시의 광업활동이 아주 미약한 것으로 추정된다.
금강변에는 공산성과 무령왕릉 · 국립공주박물관이 있고 계룡산이 가깝기 때문에 숙박업 · 요식업 중심의 3차 산업이 발달했다.
상업활동은 상설시장 및 정기시장과 슈퍼마켓 등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공주시내에 위치한 상설시장은 일대의 상업 중심지가 되고 있으며, 시내의 곳곳에 입지한 슈퍼마켓들은 근린 상권의 거점이 되고 있다. 상설시장은 유구읍에도 국도변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정기시장은 현재 시중심지의 공주장, 계룡면의 경천(敬天) · 월암(月巖)장, 정안면의 광정(廣亭)장 등 4개소가 유지되고 있다. 이 중 공주장은 1일과 6일에 상설시장일대에서 개시되어 상설시장의 상업활동에 주기적으로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경천장은 2·7일에, 월암장은 4·9일에, 광정장은 5·10일에 각각 열린다.
상권이 변화하면서 1937년 2월 20일 산성동 182번지 일대에서 매1일과 6일에 열리는 공주 정기시장으로 등록되었으나 1992년 4월 교통통신의 발달과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도 · 소매업 진흥법 제13조 및 충청남도 훈령 제822호 제3조 2항에 의거 공주 정기시장을 폐지하였다. 1997년에 유통산업발전법이 제정되고 2002년에 정기 · 상설시장으로의 등록할 필요성을 느껴 등록을 하려고 하였으나 공주시의 조례가 미비함으로서 좌절되었다. 그 후 지금까지 집단상가로서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본래, 공주시에는 장기면의 한다리[大橋]장, 사곡면의 호계(虎溪)장, 탄천면의 삼각(三角)장, 신풍면의 산정(山亭)장, 유구읍의 석남(石南)장, 반포면의 공암(孔巖)장 등 여러 개의 5일장들이 있었다. 그러나 중심지의 성장, 교통망의 확충, 교통수단의 보급, 농촌지역의 인구감소 등의 원인으로 1980년대를 거치면서 모두 폐장되어버렸다.
근대적 교통로가 개설되기 이전에는 금강을 이용한 내륙수로가 주요 교통수단이었으나, 자동차교통의 발달과 더불어 수운이 완전히 쇠퇴하였다.
중심 시가지는 금강으로 흘러드는 아주 작은 하천인 제민천(濟民川)의 좁은 골짜기에 형성되어 있는데, 1986년의 시 승격 이후 금강 북안에 신시가지가 조성되어 도시의 외연적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교통은 공주시와 조치원 · 논산 · 계룡 · 대전 · 예산 · 청양 · 전의 등을 잇는 5개 국도와 여러 개의 지방도가 개설되어 있어 아주 편리하다. 최근, 공주시내 간선도로와 부여 방면의 우금치를 연결하는 공주터널(467m)이 건설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금강에 건설한 기존의 금강교 이 외에 공주대교와 반포대교가 건설되었고, 부여∼공주 간의 백제큰길과 공주∼천안 간 23번 국도를 연결하는 금강대교가 건설되고 있다.
또한, 공주∼대전 간 32번 국도의 확장공사가 완성되었고, 천안 · 공주 · 논산 간 23번 국도의 확장공사가 완공되었다. 당진영덕고속도로, 논산천안고속도로, 호남고속철도 등이 완공되어 공주시는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계룡산과 금강이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자연풍경을 자아내고 있는 공주시 일대는 찬란한 백제문화의 유물과 유적들이 많은 곳으로서 연중 국내외의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요 관광코스는 여러 개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시내의 무령왕릉, 공산성, 곰나루 국민관광지, 석장리 구석기 유적지 등을 거쳐 창벽에 이르는 코스, 공주시에서 사곡면 마곡사에 이르는 코스 등이 있다.
계룡산의 갑사 · 동학사 일대와 마곡사 입구에 여관 · 방갈로 · 야영장 · 민박촌 · 토산품점 · 기념품점 · 토속음식점 · 주차장 등 각종 위락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시는 그동안 갑사와 동학사의 집단시설지구 재개발, 마곡사 집단시설지구 재개발, 계룡호반 내의 백제민예마을 및 도요지 재현, 반포 자연학습원의 조성, 계룡산 자연탐방로의 개설, 계룡산 자연휴양림의 조성 등을 추진했다.
그리고 공산성내에는 최근 백제왕궁추정지 · 연지(蓮池) 등이 발굴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백제문화권 특정지역 개발계획에 따라 공주 · 부여 간에 건설되고 있는 백제큰길을 중심으로 공주시 부근에 공주문화관광단지를 비롯, 노인휴양촌 · 기업연수촌 · 오토캠프촌 등이 들어서고 있다.
또한, 부여군에 백제역사재현단지가 들어서고 있어서 백제의 고도인 공주와 부여가 연계된 거대한 관광코스가 개발되고 있다.
시의 북서단에 위치한 읍. 면적 101.62㎢, 인구 8,425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석남리이다. 본래 신풍현(新豊縣)에 속해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16개 리를 관할하는 신상면(新上面)으로 되어 공주군에 속했으며, 1942년 신상면을 유구면으로 개칭하였다.
1973년에 사곡면의 3개 리, 신풍면의 2개 리, 1983년 사곡면의 동해리를 각각 편입하였다. 1995년에 공주시와 공주군이 도농통합형태의 공주시로 개편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고, 같은 해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동쪽의 금계산 · 법화산(法華山), 북서쪽의 천방산(天方山, 478m) · 극정봉(極頂峰) · 관불산(冠佛山, 398m) 등이 험한 산지를 이루고 있다.
유구천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며, 동서의 여러 지류를 합하고 다시 마곡천과 합류하여 흐른다. 정감록에서 얘기하는 십승지지(十勝之地) 중의 한 지역으로서 6·25전쟁 당시 많은 피난민들이 정착했던 곳이기도 하다.
벼농사를 주로 하나 밭농사도 많이 한다. 특히, 연종리 · 세동리 · 동해리의 고랭지무는 여름철에 서울 · 아산 등지로 상품화되어 나가고, 탑곡리에서는 호두가 많이 생산된다.
그 밖에 수세미도 이 지역의 특산물이다. 한우와 젖소 사육이 많이 이루어지며, 녹천리에는 활석광산이 있다. 녹천리 · 석남리 등에 직조공장이 6·25전쟁 당시 월남 피난민에 의해 설립되어 한때 번성했으나, 지금은 쇠퇴,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3일 ·8일에 열리던 유구장은 상설시장의 확대로 폐지되었지만, 본래 유구장은 공주 시내와 온양 등지까지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다.
유구리를 중심으로 신풍면과 예산군 신양면으로 향하는 32번 국도, 아산시 송악면으로 향하는 39번 국도, 사곡면으로 향하는 지방도 등이 교차하고 있어서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추계리에 고간원지, 탑곡리에 사지가 있다. 신영리의 해주오씨, 입석리의 밀양박씨의 동족마을이다.
석남리(石南里) · 백교리(白橋里) · 노동리(盧洞里) · 유구리(維鳩里) · 녹천리(鹿川里) · 신영리(新影里) · 신달리(新達里) · 입석리(立石里) · 명곡리(鳴谷里) · 구계리(九溪里) · 연종리(連宗里) · 세동리(細洞里) · 동해리(東海里) · 추계리(秋鷄里) · 덕곡리(德谷里) · 문금리(文錦里) · 탑곡리(塔谷里) · 만천리(萬川里) 등 18개 리가 있다.
시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84.16㎢, 인구 6,22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월암리이다. 본래 익구곡면(益口谷面)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진두면(辰頭面)을 합해 계룡산의 이름을 따서 계룡면이 되면서 공주군에 속하였다.
1938년 공주가 읍으로 승격될 때 화은 등 14개 리, 1971년 이후에 5개 리, 1983년에 3개 리가 차례로 편입되었다. 1995년에 공주시와 공주군이 도농통합형태의 공주시로 개편되면서 그에 속하였다.
공주 · 논산구조곡을 따라 도로가 뻗어 있고, 기산과 봉명 사이의 널치[板峙]를 분수령으로 북쪽의 혈저천 유역과 남쪽의 노성천 유역에 평야가 펼쳐져 있다. 동쪽의 구곡천 유역에는 침식분지가 있으며, 성화산(盛花山, 380m)과 계룡산의 연천봉 · 상봉(上峰) 등이 산지를 이루고 있다.
주곡농업 외에 금대리의 옥수수, 양화리의 참깨, 경천리의 딸기, 향지리의 고추 등 채소재배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축산 중에는 한우 및 젖소의 사육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상성리에는 옹기공장이 있다. 상거래는 공주 · 논산 상권에 들어 이루어지고 있다. 2일 ·7일에 경천장이 열리고, 4일 ·9일에 월암장이 열리고 있다. 경천장은 일제강점기 이래 잡곡시장으로 유명했으나, 지금은 보통의 정기시장과 같다.
교통이 공주시내와 논산시 노성면으로 향하는 23번 국도, 이인면과 논산시 상월면으로 향하는 697번 지방도, 월암리에서 계룡산 국립공원의 갑사로 향하는 기타 도로가 지나고 있어서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중장리의 갑사 철당간, 부도 · 동종 · 월인석보목판 · 석조약사여래입상, 향지리에 입석, 화은리에 화산영당, 양화리의 신원사에 신원사 오층석탑, 월암리에 영규대사비, 유평리에 영규대사묘 등이 있다.
화은리에 천안전씨, 기산리에 해주오씨, 상성리에 전주이씨, 경천리에 청원강씨 마을은 동족마을이 있다.
월암리(月巖里) · 봉명리(鳳鳴里) · 기산리(箕山里) · 화은리(花隱里) · 내흥리(乃興里) · 구왕리(九旺里) · 중장리(中壯里) · 하대리(下大里) · 양화리(陽化里) · 경천리(敬天里) · 화헌리(華軒里) · 금대리(錦帶里) · 상성리(上城里) · 월곡리(月谷里) · 죽곡리(竹谷里) · 향지리(香芝里) · 유평리(柳坪里) 등 17개 리가 있다.
시의 동단에 위치한 면. 면적 78.14㎢, 인구 4,82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공암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익구곡면의 일부 지역을 원봉면(元峰面)에 편입시키고, 원봉면의 동부지역에 있던 두만리 · 용담리 · 탄동리 · 안사리 등을 각각 연기군 금남면(지금의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과 대덕군 탄동면으로 이속시키면서 반포면으로 개편되어 공주군에 속하였다.
반포라는 이름은 원봉면의 반포에서 유래하였다. 1995년에 공주시와 공주군이 도농통합형의 공주시로 개편되면서 그에 속하였다. 계룡산의 주축을 이루는 곳으로 상봉 · 관암산(冠巖山) · 삼불봉(三佛峰) 등이 솟아 험한 산지지형을 이룬다.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면을 가로지르는 공주∼대전 간의 도로가 지나며, 박정자에서 동학사까지 가는 진입로가 갈라져 있다. 주곡농업을 위주로 하고 있으며, 학봉 · 온천 · 하신 등지에서는 딸기를 비롯, 각종 채소의 생산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봉곡 · 성강 · 원봉 · 상신 등지에서는 잎담배 · 메밀 · 들깨 · 버섯을 재배하며, 양봉농가도 많다.
토속음식으로 산채나물과 동학사의 빈대떡 · 도토리묵이 있으며, 제조업으로는 공암리의 직조공장, 송곡리의 옹기공장이 있다. 교통은 공주시내와 대전광역시 유성구로 통하는 32번 국도, 충청남도 계룡시 신도안면 및 계룡대(3군본부)로 통하는 641번 지방도,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과 계룡산국립공원의 동학사로 통하는 도로가 개설되어 있어서 편리하다.
최근에는 계룡대에서 동학사 입구에 이르는 도로의 포장, 동학사 입구에서 공주에 이르는 도로 확장, 마티고개의 터널 굴착, 반포대교 건설 등의 각종 공사가 마무리되어 공주시 외곽부의 새로운 교통의 결절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또한, 면 소재지에서 마티고개에 이르는 도로의 맞은편 산록에 대전광역시교육청의 교원연수원, 마암리에 충남과학고등학교가 들어서면서 반포면은 새로운 교육 기능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학봉리에 동학사와 숙모전 · 남매탑 · 분청자기요지, 국곡리에 입석, 상신리에 입석 · 당간지주 · 구룡사지가 있으며, 공암리에는 충현서원과 공암굴이 있다. 공암리에 이천서씨, 마암리에 교하노씨, 하신리에 광산김씨 동족마을이 있다.
공암리(孔巖里) · 성강리(聖岡里) · 송곡리(松谷里) · 봉암리(鳳巖里) · 국곡리(菊谷里) · 원봉리(元峰里) · 도남리(道南里) · 마암리(馬巖里) · 봉곡리(鳳谷里) · 상신리(上莘里) · 하신리(下莘里) · 온천리(溫泉里) · 학봉리(鶴鳳里) 등 13개 리가 있었는데, 이 중에서 원봉리 · 도남리 · 성강리 · 국곡리 · 봉암리가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으로 편입되었다.
시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80.04㎢, 인구 3,26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호계리이다. 본래 계실리에 소재지가 있어서 계실면으로 불리어오다가, 마곡사가 있어서 사곡면으로 바뀌었다. 1941년 신영리 일부가 우성면으로 이관되고, 1973년에는 연종리 · 세동리 · 구계리가, 1983년에는 동해리가 각각 유구읍으로 이관되었다.
1995년에 공주시와 공주군이 도농통합형태의 공주시로 개편되면서 그에 속하였다. 동쪽은 무성산, 북쪽은 갈미봉(515m) · 국사봉 · 철승산(鐵繩山)이 솟아 있어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지형을 이루고 있다. 그 사이를 흐르는 마곡천(麻谷川)과 상류부인 명가천은 사행천(蛇行川)을 이루고 있다.
『정감록』에서는 유구천과 마곡천이 합하는 지점인 해월리 부근을 십승지(十勝地)의 하나라 하여 피난처로 널리 알려져 왔다. 농업은 벼 · 보리의 곡물농업이 위주이며, 갈미봉과 무성산의 사면에 있는 회학리 · 월가리 · 유룡리 · 부곡리 등지에서는 고랭지무가 생산된다. 과수농업 중 배와 감의 생산이 활발하며, 젖소사육이 많고, 표고버섯도 많이 생산된다.
교통은 우성면과 신풍면으로 향하는 32번 국도, 정안면으로 향하는 604번 지방도 등이 지나고 있어서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운암리의 마곡사에 오층석탑과 동종, 호계리에 고인돌, 신영리에 입석과 사지, 유룡리에 귀부 등이 있다. 부곡리에 달성서씨 동족마을이 있다.
호계리(虎溪) · 신영리(新永) · 화월리(花月) · 계실리(桂室) · 해월리(海月) · 고당리(古堂) · 대중리(大中) · 가교리(佳橋) · 운암리(雲巖) · 회학리(會鶴) · 월가리(月珂) · 유룡리(油龍) · 부곡리(富谷) 등 13개 리가 있다.
시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80.61㎢, 인구 3,50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산정리이다. 백제 때 벌음지현 또는 무부현이라 했고, 통일신라 때 청음현이라 고쳐 웅주의 속현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신풍현이라 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신하면으로 바뀌면서 공주군에 속했으며, 1946년 신풍면으로 고쳤다.
1973년에 5개 리가 유구면으로 이관되었으며, 1995년에 공주시와 공주군이 도농통합으로 새로운 공주시로 개편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지형은 동쪽으로 철승산 · 옥녀봉 · 광덕산, 서쪽으로 국사봉 · 천봉 등 산지가 솟아 있고, 그 사이를 유구천이 흐른다.
유역에는 충적범람원이 있으나, 경지율은 16%로 낮은 편이다. 교통은 유구읍과 사곡면으로 통하는 32번 국도, 청양군 정산면으로 통하는 39번 국도 등이 지나고 있어서 편리하다. 채소를 많이 재배하며, 과수재배 중 감의 생산은 시내에서 수위를 차지한다. 특용작물로는 인삼 · 잎담배 · 수세미가 대표적이다.
문화유적은 쌍대리에 사지, 동원리에 사지와 삼층석탑 · 납석재사면석불이 있다. 산정리는 여주이씨, 영정리는 평산신씨의 동족마을이다.
산정리(山亭里) · 동원리(東院里) · 조평리(造平里) · 봉갑리(鳳甲里) · 용수리(龍水里) · 쌍대리(雙大里) · 청흥리(淸興里) · 대룡리(大龍里) · 입동리(笠洞里) · 백룡리(百龍里) · 선학리(仙鶴里) · 영정리(永井里) · 평소리(平所里) · 화흥리(花興里) 등 14개 리가 있다.
시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79.45㎢, 인구 5,90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동대리이다. 원래 우정면(牛井面)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성두면(城頭面)을 합해 우성면이 되었고, 공주군에 속하였다.
1983년 쌍신(雙新) · 월미(月尾)의 2개 리가 공주읍으로 편입되었으며, 1995년에 공주시와 공주군이 도농통합형태의 새로운 공주시로 개편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차령산맥의 지맥이 남서부와 남동부로 뻗어 북쪽의 무성산 · 갈미봉 · 약산(藥山, 277m) · 묵방산(墨方山, 370m) · 명덕봉(明德峰) 등이 이웃 면과의 경계를 이룬다. 유구천이 동류하여 금강과 합류되며, 유역에는 우성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산지지역이라 경지율이 25.4%로 낮으나 우성평야를 중심으로 벼농사가 행해진다.
옥성리에서는 배추 · 무 · 상추 · 오이 등 채소 재배가 활발하다. 과수는 대성리와 보흥리를 중심으로 사과 · 배 · 복숭아 등이 생산되는데, 그 생산량이 모두 시에서 으뜸이다. 특용작물로 잎담배도 성하다. 용봉리 · 방문리 · 상서리 등에서는 한우와 돼지를 많이 사육한다.
교통은 사곡면과 공주시내로 통하는 32번 국도, 청양군 목면으로 통하는 36번 국도 등이 지나고 있어서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보흥리에 입석, 귀산리에 만경노씨 삼의사 생가지, 단지리에 산성, 도천리에 고분 등이 있다. 동곡리 · 귀산리 · 목천리에 만경노씨 동족마을이 있다.
동대리(銅大里) · 단지리(丹芝里) · 방문리(方文里) · 상서리(上西里) · 평목리(坪目里) · 도천리(道川里) · 신웅리(新熊里) · 내산리(內山里) · 한천리(韓川里) · 동곡리(東谷里) · 반촌리(盤村里) · 귀산리(貴山里) · 목천리(木泉里) · 방흥리(方興里) · 보흥리(寶興里) · 대성리(大城里) · 옥성리(玉城里) · 용봉리(龍鳳里) · 안양리(安陽里) · 봉현리(鳳峴里) · 어천리(魚川里) · 죽당리(竹堂里) · 오동리(梧洞里) 등 23개 리가 있다.
시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65.51㎢, 인구 5,49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청룡리이다. 본래 의랑골[儀郞谷]의 이름을 따서 의랑면이라 하여 53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요당면 · 반정면 · 정안면 · 동부면의 일부지역을 병합해, 의랑과 요당(要堂)의 이름을 따서 의당면이 되면서 공주군에 속하였다. 1995년에 공주시와 공주군이 도농통합형의 새로운 공주시로 개편되면서 그에 속하였다.
천대산(392m)과 시모산(侍慕山) 등 산지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서쪽의 정안천 유역에는 비옥한 충적지가 발달되어 있다. 논농사와 밭농사의 비율이 4 : 1로 논농사가 많은데 특히 수촌리의 쌀은 맛좋기로 이름나 있다. 최근 들어 오인리와 요룡리에서는 배추 · 딸기 · 참외의 시설원예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잎담배의 생산도 활발하다.
축산은 태산리 · 용현리 등지의 젖소 · 한우 · 돼지 사육과 양봉 등이 알려져 있다. 제조업으로는 월곡리에 백제민예품공예사가 있다. 교통은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 전의면과 공주시내로 통하는 691번 지방도 등이 지나고 있어서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태산리에 덕천군 사우, 도신리에 입석, 두만리에 사지가 있다. 태산리 · 용현리 · 용암리에 전주이씨, 송학리 · 중흥리에 문화유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월곡리(月谷里) · 두만리(斗滿里) · 요룡리(要龍里) · 오인리(五仁里) · 수촌리(水村里) · 율정리(栗亭里) · 청룡리(靑龍里) · 태산리(台山里) · 유계리(柳溪里) · 송정리(松亭里) · 송학리(松鶴里) · 용현리(龍峴里) · 용암리(龍巖里) · 중흥리(中興里) · 가산리(佳山里) · 도신리(道新里) · 덕학리(德鶴里) 등 17개 리가 있었는데, 이 중에서 태산리 · 용암리 · 송학리 · 용현리 · 송정리가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으로 편입되었다.
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62.98㎢, 인구 3,71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이인리이다. 원래 목동면(木洞面)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14개 리로 정리하고, 면 소재지를 목동리에서 이인리로 옮기면서 이인면으로 개칭, 공주군에 속하였다.
1938년에 주외면의 검상리 · 봉정리 · 주미리가 편입되었고, 1983년에 주미리 · 태봉리 · 봉정리 · 오곡리가 공주읍으로 편입되었으며, 탄천면의 복룡리 · 반송리 · 이곡리 · 운암리가 편입되었다. 1995년에 공주시와 공주군이 도농통합형의 새로운 공주시로 개편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동쪽의 복귀산(福貴山) · 성항산(城項山), 서쪽의 건지산(乾芝山, 235m) · 운암산(雲巖山) · 백운산(白雲山) 등 구릉성 산지가 많은데, 이 구조선을 가로질러 북으로는 검상천(檢詳川), 남으로는 용성천이 흘러 금강과 합류되며, 하천유역에는 분지지형이 발달되어 있다.
경지율은 24%로 낮으나 농업인구가 많으며, 초봉리 · 용성리 · 구암리 · 검상리 등지에서 주곡농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채소는 만수리를 중심으로 무가, 발양리를 중심으로 배추가 생산되고 있다. 그 밖에 고추도 많이 생산된다. 축산으로는 한우 · 닭 등의 사육이 시내에서 손꼽힐 만큼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교통은 공주시내와 탄천면으로 향하는 40번 국도, 계룡면으로 향하는 697번 지방도 등이 개설되어 있어서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오룡리에 귀부와 숭선군(崇善君)의 묘, 초봉리에 고인돌, 신흥리에 입석과 사지, 이인리에 산성, 만수리에 산성이 있다. 운암리의 해주오씨 마을이 있다.
이인리(利仁里) · 검상리(檢詳里) · 오룡리(五龍里) · 만수리(萬樹里) · 신흥리(新興里) · 주봉리(朱峰里) · 목동리(木洞里) · 발양리(發揚里) · 초봉리(草鳳里) · 용성리(龍城里) · 구암리(九巖里) · 달산리(達山里) · 산의리(山儀里) · 복룡리(伏龍里) · 반송리(盤松里) · 이곡리(梨谷里) · 운암리(雲巖里) 등 17개 리가 있다.
시의 동부에 위치했던 면. 면적 57.60㎢, 인구 5,959명(2008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도계리였다. 2012년 장기면의 금암리 · 은용리 · 산학리 · 봉안리 · 도계리 · 하봉리 · 송정리 · 송문리 · 평기리 · 대교리가 세종특별자치시에 편입되면서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으로 행정구역 명칭이 변경되었다. 기존 장기면 동현리 · 송선리 · 장암리는 공주시 동현동 · 송선동 · 장암동으로 변경되었다.
본래는 장자못의 이름을 따서 장척면(長尺面)이라 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삼기면 · 요당면 · 동부면의 일부를 합해 장척과 삼기(三岐)의 이름을 따서 장기면이라 하고, 공주군에 속하였다.
1995년에 공주시와 공주군이 도농통합형의 공주시로 개편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지형은 장군봉(354m)이 주봉을 이루며, 남쪽은 금강 구조선에 의하여 남과 북으로 끊긴 채 반포면의 산지와 대칭을 이루고 있다. 동쪽은 대교천과 그 지류들이, 서쪽은 월송천(月松川) · 중상천(中山川)이 있으며 유역에 범람원이 발달되어 있다.
주곡농업 외에도 원예농업이 발달되어 딸기 생산은 군에서 수위를 차지하며, 무 · 사과 · 복숭아도 많이 생산된다. 특용작물로는 잎담배 · 인삼의 재배가 늘어가고 있다. 최근 들어 남양유업공장이 들어서면서, 이에 힘입어 송문리의 성암목장을 비롯, 낙농이 늘어나고 있다. 상권은 공주시장권에 속해 있으며, 대전 · 조치원과의 시간적 거리가 단축되어, 이들 여러 도시와 쉽게 연결된다.
교통은 공주시내와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으로 통하는 36번 국도 등이 개설되어 있어서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당암리에 입석, 하봉리에 유형장군 유물, 대교리에 김종서장군묘, 봉안리에 백제고분군, 평기리에 산성이 있다. 송선리에 전주이씨, 장암리에 경주김씨 동족마을이 있다.
도계리(道溪里) · 평기리(坪基里) · 대교리(大橋里) · 봉안리(鳳安里) · 제천리(濟川里) · 당암리(唐巖里) · 금암리(錦巖里) · 장암리(壯巖里) · 송선리(松仙里) · 하봉리(下鳳里) · 동현리(東峴里) · 은룡리(隱龍里) · 산학리(山鶴里) · 송문리(松文里) 등 14개 리가 있었다.
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108.90㎢, 인구 5,15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광정리이다. 본래 정안면으로 70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요당면의 3개 리를 병합했으며, 공주군에 속하였다. 1995년에 공주시와 공주군이 도농통합형의 새로운 공주시로 개편되면서 그에 속하였다.
면의 명칭은 조선시대의 정안골에서 유래했다. 동쪽의 국사봉, 서쪽의 갈미봉 등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지형이며, 천안∼공주구조곡을 따라 정안천이 남류하고, 여러 지류가 합류되어 금강으로 흘러간다.
계곡을 따라 예로부터 이름있는 모란역 · 광정역과 차령고개를 지나 천안으로 가는 국도가 나 있고, 서쪽의 마곡사와 동쪽의 의당을 이어주는 도로가 광정리에서 교차된다.
계곡 사이의 낮은 지대에서는 벼농사도 일부 이루어지고 있으나, 국도가 포장되면서부터는 석송리에서 참외 · 고추 · 딸기 등 채소농업이 활발해졌다. 내문리에서 생산되는 고랭지무는 공주나 서울 등지로 출하된다. 장원리와 월산리에서는 양봉이 행해지며, 문천리 · 산성리 등의 산록에서는 호두 생산이 많다. 또 인풍리 · 사현리 · 태성리의 밤단지는 생산량이나 경영 규모에 있어서 전국적으로 이름나 있다.
제조업으로는 내촌리에 옹기공장, 광정리에 돌공장이 있다. 상거래는 공주 · 천안 상권에 속하며, 5일과 10일에 광정장이 소규모로 열린다. 교통은 천안시 광덕면과 공주시 의당면으로 향하는 23번 국도, 의당면과 공주시내로 향하는 604번 지방도 등이 있어서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사현리에 국선사, 광정리에 김옥균선생 유허가 있다. 보물리에 원주원씨, 어물리에 전주이씨, 장원리에 전주최씨 동족마을이 있다.
광정리(廣亭里) · 산성리(山城里) · 내문리(內門里) · 문천리(文川里) · 태성리(台城里) · 인풍리(仁豊里) · 전평리(田坪里) · 화봉리(花鳳里) · 석송리(石松里) · 사현리(沙峴里) · 대산리(大山里) · 월산리(月山里) · 고성리(高聖里) · 장원리(長院里) · 상룡리(上龍里) · 어물리(於物里) · 내촌리(內村里) · 운궁리(雲弓里) · 보물리(甫勿里) · 쌍달리(雙達里) · 평정리(平正里) · 북계리(北溪里) 등 22개 리가 있다.
시의 남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64.45㎢, 인구 3,36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삼각리이다. 원래 반탄면(半灘面)이라 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곡화천면(曲火川面) · 탄부면 · 진부면, 노성군의 소사면, 부여군의 동도면을 병합, 탄천면이 되면서 공주군에 속했다.
1983년 운암리 · 이곡리 · 반송리 · 복룡리가 이인면으로 편입되었다. 1995년에 공주시와 공주군이 도농통합형의 새로운 공주시로 개편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서쪽으로 금강구조선이 형성되어 있으며, 비교적 높은 철봉산(227m)을 제외하고는 평안산(平安山, 162m) · 백운산 · 옥녀봉 · 감투봉(194m) 등 대체로 낮은 산지로 되어 있다.
평야는 금강지류의 좁은 계곡 사이와 동쪽의 우교천(牛橋川) · 하광천 유역에 발달되어 있다. 산업은 주곡농업이 위주이며, 잎담배와 고추도 많이 생산된다. 축산으로는 견동리를 중심으로 돼지 사육이 활발한데, 대부분이 농가의 부업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상권은 공주와 부여시장권에 속해 있다.
교통은 이인면과 부여군 부여읍으로 통하는 40번 국도가 지나고, 부여군 초촌면으로 향하는 799번 지방도 등이 개설되어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가척리와 청림사지(靑林寺址), 성리에 고인돌, 정티리에 정티사지(鼎峙寺址)가 있다.
송학리에서는 연례행사로서 장승제가, 남산리에서는 느티나무제가 행해지고 있다. 삼각리(三角里) · 광명리(光明里) · 장선리(長善里) · 안영리(安永里) · 덕지리(德芝里) · 화정리(花井里) · 남산리(南山里) · 가척리(加尺里) · 정티리(鼎峙里) · 성리(聖里) · 송학리(松鶴里) · 분강리(汾江里) · 유하리(柳下里) · 국동리(菊洞里) · 운곡리(雲谷里) · 견동리(見東里) · 대학리(大鶴里) 등 17개 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