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시 ()

대동여지도 중 경상남도 하동, 전라남도 광양 부분
대동여지도 중 경상남도 하동, 전라남도 광양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전라남도 동남단에 위치한 시.
정의
전라남도 동남단에 위치한 시.
개관

동쪽은 섬진강을 경계로 경상남도 하동군, 서쪽은 순천시, 남쪽은 광양만, 북쪽은 구례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7°31'∼127°47', 북위 34°53'∼35°10'에 위치한다. 면적은 462.25㎢이고, 인구는 15만 3587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6개 면, 5개 행정동(10개 법정동), 203개 행정리(59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전라남도 광양시 중동에 있다.

자연환경

소백산맥의 남단에 해당하는 백운산(白雲山, 1,218m)이 군의 북부에 솟아 있고 서쪽의 솔봉(1,123m)·형제봉(861m)·동주리봉(862m) 등과 동쪽의 매봉(865m)이 동서로 늘어서 있고, 북부는 험준한 산악지대이다. 옥룡면에 있는 백계산(白鷄山, 506m)은 동백림으로 유명하다. 백운산의 남쪽으로 4개의 지맥이 뻗어 있는데, 이는 천연적으로 순천시와 경계를 이룬다.

하천으로는 섬진강을 비롯해 진상면 어치(於峙, 1,216m)에서 발원한 수어천(水魚川), 백운산과 도솔봉에서 발원한 서천·동천이 있는데 모두 북쪽에서 남쪽으로 지나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지으며 흐르는 섬진강은 하구인 진월면에 이르러 넓고 긴 하구가 되어 태인도에 이른다. 과거에는 수량이 꽤 많았으나 현재는 상류부의 댐 건설로 인하여 수량이 크게 줄고, 그리고 퇴적물이 쌓여 강바닥이 높아져 2∼3톤짜리 나룻배가 드나들 때도 불편하다.

광양만은 1980년대 중반까지 13개의 유인도와 21개의 무인도가 있어 다도해를 이루었으나, 개펄이 넓고 간척지 개발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어 간척사업공사가 계속됨에 따라 현재는 6개의 무인도만 남아 있다.

기후는 해안선을 끼고 있어 난류와 해양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온화한 해양성 기후의 특색이 나타난다. 연평균기온은 13.9℃이고, 1월 평균기온 0.7℃, 8월 평균기온 26.4℃이다. 겨울은 대륙성 기후의 영향으로 3한 4온의 기온이 뚜렷하다. 연강수량은 1,920㎜로 다우지역이며, 농작물 재배에 좋은 조건을 이루고 있다. 특히 섬진강 하류는 우리나라 최다우지의 하나이다.

역사

구석기시대 유적·유물은 봉강면 석사리, 옥곡면 대죽리, 옥룡면 용곡리·죽천리, 진상면 지원리 등 6개소에서 다수 발견되었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유물로는 진월면 오사리·진정리에서 빗살무늬토기편들이 발견되고 있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유적·유물로는 광양읍 덕례동과 봉강면·진상면·옥곡면 등지에 고인돌군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아울러 돌칼·돌도끼·돌끌·조개무지 등도 발견되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 54국 중 하나인 만로국(萬盧國)이 광양지역에 있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옥룡면 죽천리 내천마을이나 진상면 비촌마을에 변한의 성지(城址)라고 전해 내려오는 유적이 있어 변한의 영역에 속했을 가능성도 있다.

백제에 편입된 뒤로는 마로현(馬老縣)이라 했으며, 신라의 통일 이후에는 희양현(曦陽縣)으로 개칭하고 순천군의 영현이 되었다. 신라 말엽 풍수지리설의 창시자로 알려진 도선(道詵)이 백운산 옥룡사에서 독자적인 선문를 개설하였다.

940년(태조 23)에 광양현으로 개칭되어 여전히 승평군의 속현으로 있다가 충정왕 이전에 감무가 파견됨으로써 주현으로 독립하였다. 이 무렵에 광양김씨가 벌족(閥族: 나라에 공이 많고 벼슬 경력이 많은 집안)으로 대두해 당대 최고의 외척인 인주이씨나 해주최씨 등과 혼인관계를 가지면서 정치무대에서 활약하였다. 고려 말에 이르러 왜구의 노략질로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1413년(태종 13)에 현감이 파견되었다. 1597년(선조 30)의 정유재란 때 왜장 고니시[小西行長]의 침공을 받았는데, 광양성에서 치열한 전투 끝에 왜군을 왜성대로 물러나게 하였다.

그러나 이 전투의 결과로 광양현이 폐허화됨에 1598년순천에 편입되었다가 얼마 뒤 다시 분리, 복구되었으나 피폐한 읍세는 쉽게 회복하지 못하였다. 조선 말기 사회모순이 격화되었을 때 두 차례(1869, 1889)에 걸쳐 민란이 발생한 것도 이 같은 지역적 여건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때 패퇴한 농민군이 광양과 섬진강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으며, 이 때 섬진강에 빠져 죽은 자가 3,000∼4,000명이나 될 정도로 큰 손실을 입었다. 1895년의 관제개혁 때 남원부 소속의 군이 되었으나 이듬해 13도 체제로 다시 개편했을 때 전라남도에 속한 광양군이 되었으며, 돌산군이 새로이 만들어질 때 여러 섬들을 돌산에 이속시켰다.

1906년 백낙구(白樂九)·황순모(黃珣模) 등을 주축으로 한 의병항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으며, 이는 전라도 의병봉기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1914년 일제가 지방행정체제를 개편할 때 칠성면·우장면·사곡면 등이 광양면으로, 진하면과 월포면이 진월면으로 통합되고 돌산에 이속시켰던 여러 섬들이 재편입되는 등의 변화를 겪었다. 1915년 섬진강 연안의 다압면 섬진리가 경상남도 하동군으로 이속되었다.

1923년 농민 500여 명이 단합해 소작쟁의를 일으켰으며, 이듬해 1월에는 골약면에서 소작쟁의가 일어났고, 1932년 1월에는 금광 광부 800여 명이 동맹파업을 하는 등 일제의 경제적 수탈에 항거하는 운동이 어느 지역보다도 활발하게 일어났다. 1934년에는 광양청년회 회원 100여 명이 독서회 사건으로 체포되기도 하였다.

1948년여수·순천 사건의 잔당들이 백운산에 은거하면서 광양을 약탈 대상으로 삼아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1949년광양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66년골약면에 태인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1973년에는 골약면 송장리가 여천군 율촌면으로 이속되었다.

1981년 11월광양만에 제2제철소의 건립이 시작됨에 따라 1986년골약면과 태금면 및 옥곡면 광영리 일대를 관할하는 광양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89년 광양출장소를 동광양시로 승격, 광양군에서 분리되었다. 1995년 시·군 통합에 따라 광양군과 동광양시가 통합해 광양시로 되었다. 1998년광양시 과소동 통폐합으로 황금동·성황동을 골약동으로, 금호동·금당동을 금호동으로 통폐합하였다.

유물·유적

구석기시대 유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인근지역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존재 가능성이 많다고 보인다. 신석기시대 유적으로는 진월면 오사리진정리 증산의 패총에서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되었다. 오사리 패총은 100×200m 범위에 최대 1.5m의 패각층을 나타내는 대규모 패총이다.

청동기시대 유적은 고인돌만 알려져 있다. 36곳에 284기의 고인돌이 분포해 있는데, 봉강면 지곡리와 옥룡면 산남리 남정 고인돌군은 약 40여 기씩 군집되어 있다. 발굴된 옥곡면 원월리 고인돌에서는 석곽형 석실 5기가 확인되었고, 석검·석부·석촉·어망추·지석 등 다양한 석기류와 공렬토기·붉은토기·민무늬토기 등 토기류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광양읍 덕례리 회암에서 미완성 석검이 발견되었다.

원삼국시대 유적으로는 조개더미와 집터 추정지가 있다. 봉강면 석사리 옥현 조개더미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사슴뿔을 이용한 도자병과 경질무문토기·우각형파수·시루 등 다량의 토기가 출토되었다. 주거지로는 광양읍 용강리·덕례리·인서리 등 강변 퇴적평지와 구릉사면에서 원삼국시대 토기편들이 발견되고 있다.

성지로는 임진왜란 이전에 축조한 중흥산성과 임진왜란 때 축조한 마로산성(馬老山城)·불암산성(佛巖山城) 이외에 광양읍성지·내천현지(奈川縣址) 등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옥룡면 운평리에 중흥산성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중흥사석조지장보살반가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6년 지정)·광양성황리삼층석탑(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 옥룡면 동곡리에 광양 송천사지 회은장노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92년 지정)가 있으며, 이 외에 옥룡사지석탑재·보운사지석등재·송천사지(松川寺址)의 부도군과 석조(石槽), 그리고 백운사목조삼존불감이 있다.

옥룡사지(사적, 1998년 지정)에서는 도선국사비편·동진대사(洞眞大師)비편과 비각 건물지가 발굴되었다. 현존하는 사찰로는 옥룡면 추산리에 도선이 『도선비기』를 지었다는 옥룡사지가 있고, 운평리에 중흥사, 동곡리에 백운사(白雲寺)·상백운암(上白雲庵), 봉강면 조령리에 성불사(成佛寺)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1443년(세종 25)에 창건했다는 광양향교(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가 광양읍 우산리에 있으며, 최산두(崔山斗) 등을 모신 봉양사(鳳陽祠)와 유학을 교육시킨 흥학재(興學齋)가 있다. 정자로는 유당공원 안의 유림정(柳林亭)과 봉강면의 거연정(居然亭)이 있고, 최산두가 수학했던 학사대(學士臺)가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광양읍 인동리에 광양읍수와 이팝나무(천연기념물, 1971년 지정)가 있다.

기타 문화재로는, 광양궁시장(전라남도 무형문화재, 1986년 지정)이 있고, 옥룡면 추산리에 광양 옥룡사 동백나무 숲(천연기념물, 2007년 지정)이 있으며, 수령이 500년 된 광양향교은행나무와 옥곡면 장동리의 팽나무, 광양읍 인서리의 느티나무숲이 있다. 태인동에는 김시식지(전라남도 기념물, 1987년 지정)가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광양향교가 있다. 1443년(세종 25)에 창건했는데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다가 1765년(영조 41)과 1817년(순조 17)에 풍화루·대성전 등이 중건되었으며, 현존하는 향약안(鄕約案) 등에서 향촌 여론기구로서 향강(鄕綱)을 수립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조선 중기 이후 사림의 서원 설립 추세에 따라 1578년(선조 11)에 설립한 봉양서원(鳳陽書院)은 최산두(崔山斗)·박세후(朴世煦) 등을 배향했는데,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77년 조산(朝山)에 옮겨 복원되었다. 1785년(정조 9)에는 향교 가까운 남쪽에 양반층의 독서와 집회 장소로서 양사재인 흥학재(興學齋)를 건립하였다.

근대교육기관의 효시는 1907년 3월 정인표(鄭寅杓)·유치룡(柳致龍)·강주순(姜周淳) 등이 다압면 금천리에 설립한 사립 광동학교(光東學校)이다. 1913년에 폐교된 뒤 금천사숙(錦川私塾)으로 다시 개교해 1943년에 다압북국민학교가 되었다.

1907년 9월에는 군수 서상붕(徐相鵬)이 세운 사립 희양학교(曦陽學校)가 개교했으며 1910년 인가 후 공립 광양보통학교로 되었다. 이후 1919년에 공립 진상보통학교가 있는 정도였으나, 1면 1개 교 설립 계획으로 1938년 당시에 8개 교의 공립 보통학교가 있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8개교, 중학교 14개교, 고등학교 8개교가 있고, 광양보건대학교와 한려대학교가 있다.

문화시설로는 공공 도서관 5개, 일반 공연장 2개, 시민회관 1개, 복지회관 1개, 문화원 1개가 있으며, 경기장 시설로는 실내체육관 1개, 공설운동장 1개, 축구전용구장 1개, 마동구장 1개, 마동풋살구장 1개, 수영장 1개가 있다.

민속

이 지방 특유의 놀이로 약수제가 있다. 백운산의 고로쇠나무에서 나오는 고리수는 신경통에 특히 효험이 있다고 해, 매년 경칩이 되면 인근 사람들이 모여 약수를 받아 놓고 하루를 즐기며 마시는 행사가 백운산약수제이다. 이 행사 기간 동안 궁도대회·국악공연·농악놀이가 계속되는데, 이를 위해 백운사가 건립되었다.

광양농악이 다른 지방과 다른 점은, 버꾸놀이에서 북놀이가 더 있다는 것과 김매기농악을 할 때 마을간에 접전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김매기농악놀이는 양편이 기를 꽂아 각각 진지를 만들고 나팔을 불어 접전을 한다.

태인동 용지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 뒤 3일 내에는 줄다리기가 실시된다. 이 놀이를 옛날에는 현청 앞에서 했는데, 용줄을 그 곳까지 운반하면서 치는 농악놀이가 장관이었다고 한다. 고를 걸고 줄다리기가 시작되면 온 군민이 양편으로 나뉘어 줄을 끌기 때문에 줄의 길이가 아득할 정도였고, 승리한 편에게는 술과 안주로 대접하며 상금도 주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농촌에서 즐기는 민속놀이인 마당밟기·다리밟기·더위팔기·초군놀이 등과 광양만 일대의 전어잡이 등이 있다.

이 지방의 동제는 정기적으로 지내는 사직제·서낭제·여제(厲祭) 등과 상황에 따라 수시로 지내는 기우제가 있다. 기우제를 지낼 때는 지방 유지를 제관으로 선정하며, 선정된 제관은 목욕재계하고 심신을 청결하게 한 다음 제에 임한다. 이 동안 마을 주민은 문전에 황토를 깔아 비 내리기를 기원한다.

정기적인 동제로서 사직제는 사직단에서 토지신과 곡신에게 제를 지내 풍년을 기원하는 것이고, 서낭제는 서낭신에게 제사를 지냄으로써 재난을 없애고 복을 빌며 여행의 피로를 풀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여제단(厲祭壇)은 한 해의 액과 질병을 막기 위해 여신(돌림병의 신)에게 제를 지내던 곳이다. 마을사람들은 정월대보름에 이곳에 모여 정성껏 제사를 지냈다.

설화·민요

이 지방의 설화로는 「최산두의 전설」·「옥룡사의 연기설화」·「살구나무귀신이야기」 등이 전한다. 「최산두의 전설」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이다. 백운산의 세 정기 중 하나인 봉황의 정기를 타고난 한림학사 최산두는 어린시절 재를 넘어 공부하러 다녔다.

그 재는 낮에도 무서운 곳이었는데, 어느 날 비바람이 몰아쳐 최산두가 바위굴로 몸을 피했다가 그 곳에서 귀신들이 한림학사가 오셔서 나갈 수가 없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최산두는 그 뒤에도 계속 그 고개를 넘어 다녔는데, 하루는 예쁜 처녀가 유혹하였다.

서당 훈장에게 그 말을 했더니 훈장이 처녀의 입에 있는 구슬을 빼앗아 삼키라고 하였다. 훈장의 말대로 했더니 처녀는 여우가 되어 울며 달아나고, 최산두는 여우구슬 덕으로 유명한 학자가 되었다고 한다.

또 「옥룡사의 연기설화」는 다음과 같다. 신라 말에 도선이 상백운암에서 종이로 학을 접어 날렸더니 백계산의 큰 못에 떨어졌다. 그 못에는 청룡과 백룡이 살고 있었다. 도선이 이번에는 활을 쏘자 청룡은 하늘로 올라가 버리고, 백룡만 남아 버티다가 거듭 쏜 화살에 눈을 맞고서야 승천하였다.

도선은 그 곳에 옥룡사를 세우고는 백씨 성을 가진 중은 절대로 들이지 말라고 일렀다. 뒤에 성명부지의 한 중이 들어왔는데 절에 불이 나서 타버렸다. 그 중은 성이 백씨였고, 그 재난은 백룡이 꾸민 보복이었다고 한다.

「살구나무귀신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도월리 월평마을의 백씨 집에 살구나무가 있었는데 어찌나 큰지 무서워서 베어 버렸다. 얼마 뒤 백씨네 출가한 딸이 자식을 얻고자 산제를 지내려고 메를 짓고 있는데, 더벅머리 총각 하나가 와서 피가 흐르는 다리에 솥에서 넘치는 밥물을 찍어 바르면서 자기는 베어진 살구나무의 귀신이라고 하였다.

귀신은 백씨의 딸에게 이르기를 장차 아들 셋을 낳을 것이나 10년 뒤에는 자기의 보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과연 그녀는 아들 셋을 두었으나 모두 서른이 못 되어 죽고, 그 뒤로 이 마을의 백씨네 집에는 손이 끊기고 말았다고 한다.

또 왜군이 쳐들어왔을 때, 우리 군사들이 쫓기다가 두치강에 이르자 난데없이 두꺼비 수백 마리가 떠올라 다리를 놓아 주어 무사히 건너게 하고는, 왜군이 건너는 도중에는 두꺼비가 모두 강속으로 들어가 빠져 죽게 하였다. 그로부터 두치강을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밖에 외로운 할머니의 말동무가 되어 주었더니, 그 할머니가 죽어 호암리의 범바위가 되어 마을의 재앙을 막아 주었다는 이야기 등이 있다.

광양 지방에는 예로부터 농악이 발달해 현재까지도 잘 전해오고 있으며, 김매기 농악이 따로 있는 것으로 보아 벼농사와 관련된 노동요가 있었을 듯하나 지금까지 조사된 농요는 없다. 전승되고 있는 민요로는 장례를 치를 때 상여를 운반하며 부르는 「상여소리」와 집을 지을 때 땅을 다지며 부르는 「지경닺는소리」가 있다.

「상여소리」는 「오체소리」라고도 하는데 3분박 4박자로 늦은 자진모리장단에 맞으며, 4장단 정도를 선소리꾼이 “거진 장판은 어디를 가고 맨 솔밭으로 돌아를 가시냐” 하고 메기면 상여꾼들이 같은 장단에, “어이가라 어허 에헤이 어허 에헤 에헤어 어이가라 어허 에헤이 어허 에헤요” 하며 일정하게 받는다.

그러나 가사에 따라 박이 드나들어 불규칙 장단으로 변하기도 한다. 「상여소리」의 선율은 육자배기토리가 주이지만 가끔 다른 선율 진행을 보여 색다른 맛을 주기도 한다.

「지경닺는소리」는 3분박 4박자로 자진중중모리장단에 맞는데, 선소리꾼이 “잘도찐다 방아로구나” 하며 한 장단에 메기면 일꾼들이 같은 장단에 “얼럴럴 상사뒤야” 하며 받는다. 이 지방의 「지경닺는소리」는 메기는 소리가 메나리토리의 선율로 되어 있고 받는 소리는 경토리로 되어 있다.

이 외에도 부녀자들이 주로 부르는 「신세한탄가」, 물레를 돌리며 부르는 「물레소리」 등이 있다. 「신세한탄가」는 월령체 형식으로 시집 간 딸이 어머니를 생각하며 부르는 것인데, “가고 없네 가고 없네/병자년 동짓달에/울어머니 가고 없네/한달잡고 설흔날에/삼백하고 육십날에/어느날에 어느밤에/어매품을 잊을쏜가……” 하며 시작된다.

그 밖에 「육자배기」·「흥타령」·「진도아리랑」·「노랫가락」 등도 많이 불리는데, 경상남도와 인접해 있어서 메나리토리의 선율도 보이지만, 주로 전라도의 육자배기토리로 된 선율이 많이 불리는 점이 이 지방 민요의 특징이다.

산업·교통

산지가 많아 총 농경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17.9%로 경지율이 낮으며 논이 74.5%, 밭이 25.4%를 차지한다. 크고 작은 하천유역에는 좁고 긴 평야가 있어 주요 경작지와 주거지를 이룬다. 이들 농경지에 백운저수지·복곡저수지·인덕저수지가 있어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며 조·수수·옥수수·콩·팥·감자·고구마 등이 소량 생산된다. 일찍부터 원예작물 재배를 시작해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배추·무·오이 등의 채소류도 많이 생산된다.

1968년 이후 밤나무단지가 조성되어 전국 제일의 밤 산지가 되었으며, 백운산 자락에서는 매실의 생산량도 많다. 사과·배·복숭아·포도·감·단감 등의 재배로 농가소득이 높아지고, 양축 농가가 증가해 야산의 산지 사면을 이용한 비육우 사육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농한기에 부업에 종사하여 얻는 수입이 전체의 50%를 넘고 있다.

수산업을 전업으로 하는 어가나 인구는 거의 없고 겸업의 형태를 보인다. 어가가 보유한 어선은 동력선이 무동력선에 비해 척수(75%: 25%)와 톤수(84%: 16%) 면에서 절대적으로 많으나, 5톤 미만이 절대 다수여서 영세 규모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광양만에서는 김·백합·고막 등의 양식업이 이루어졌으나 광양제철공단 조성 이후 어장이 황폐화되어 김·고막 등의 생산이 중단됨에 따라 김의 원산지로서의 명성을 잃고 있다. 특히 농업과 어업활동으로 생활하던 사람들이 공장 근로자가 된 경우가 많았다. 섬진강에서는 재첩이 채취되어 특산물로 알려져 있으며, 그 하구에서는 장어양식이 이루어진다.

광공업으로는 광양읍 사곡리와 초남리에 광양광산이 있어 금·은·동 등을 생산했으나 지금은 휴광 중이다. 광양만에는 588만 평의 인공 섬에 광양제철소와, 그와 연관된 공장들이 들어서 대규모의 철강공업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2008년 현재 광양제철수의 조강량은 3360만 톤이다. 2004년 광양항 2차 컨테이너 부두가 준공되고 자유무역지구로 지정되면서 관련 시설 및 배후 단지가 계속 들어서고 있다.

상업활동은 5일 정기장과 구(舊)동광양시의 상업시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광양주민들의 상업활동은 지형의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섬진강에 인접한 지역, 즉 옥곡면·진상면·진월면·다압면 등은 나룻배를 타거나 섬진교를 건너 하동장을 주로 이용하는 반면, 광양읍·옥룡면·봉강면·진월면은 주로 버스로 25분 정도 거리의 순천장을 이용한다.

특히 광양읍을 비롯한 인근 주민들은 지리적으로 순천시와 가까울 뿐만 아니라 교통이 편리해 생활용품을 구하러 가까운 순천시의 상가를 주로 이용한다. 현재 읍내장이 1일·6일, 옥곡장이 4일·9일, 섬거장이 3일·8일에 각각 열린다.

1977년 남해고속도로가 완성된 뒤, 도로가 지나가는 진월면 주민들이 이용하는 시장이 섬거장에서 옥곡장으로 바뀌었다. 한편, 광양제철공장의 건설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한 동광양시는 신흥공업단지로 변모하면서 새로운 상가가 조성되어 예전의 정기시장과 규모가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도로는 남해고속도로가 군을 동서로 관통하며 원거리인 광주, 경상남도의 진주, 부산 등지에서 접근이 쉽다. 또 광양읍을 중심으로 순천과 경상남도 하동을 잇는 국도가 연결되어 있고, 경전선이 통과해 교통이 편리하다.

최근 광양제철공단의 화물을 수송할 수 있는 철도와 산업도로가 개설되었으며 컨테이너를 수송할 국제항구가 건설되어 운영되고 있다.

관광

지리산과 연봉을 이루는 백운산, 푸른 섬진강, 그리고 광양만의 해안경관이 잠재적 관광자원을 이루며, 광양제철소 및 연관공업단지 또한 산업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시의 북부에 우뚝 솟은 백운산은 동쪽으로 억불봉(億佛峰), 서쪽으로는 도솔봉과 읍봉, 형제봉을 거느리고 남쪽으로 4개의 지맥을 뻗고 있어 그 위용이 장엄한 전라남도의 명산이다. 이 산기슭에 있는 옥룡사지 인근에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성불계곡·동곡계곡·어치계곡 등 깊은 계곡이 있어 수량이 풍부하고 산기슭 일대에 희귀한 식물이 자생해 식물의 보고이며, 다양한 동물과 곤충이 서식해 수려한 자연경관과 자연의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산의 정상에서 바라보는 사방의 경관은 장관이다. 북쪽의 장엄한 지리산의 절경을 비롯해 백운산을 굽이굽이 휘감고 도는 푸른 섬진강의 물결과 강을 따라 전개되는 은모래밭, 남쪽의 크고 작은 섬들이 쪽빛 바다에 떠 있는 다도해가 손에 잡힐 듯 한눈에 들어온다. 백운산에서 채취한 ‘고로쇠약수’는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져, 이른봄 경칩을 전후해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를 마시기 위해 찾아온다.

백운산 기슭에 도선이 창건한 중흥사, 백계산의 지세에 반해 역시 도선이 창건한 옥룡사지가 있으며, 용문사·성불사 등의 고찰이 있다. 광양읍에는 아담한 유당공원이 있고, 진월면 망덕리에는 모래질이 좋은 망덕리해수욕장이 있었는데, 태인도간의 농로가 생기고부터 진흙으로 모래사장이 훼손되어 지금은 폐장상태에 있다.

강과 바다가 합류되는 자연경관이 좋은 곳이고 섬진강휴게소도 있어 관광개발의 여지가 많다. 옥룡면 동곡리에는 기암괴석과 노송이 어우러진 자연암굴인 학사대(學士臺)가 있다. 광양의 특산명물로는 사대부와 부녀자들이 호신용으로 몸에 지니고 다녔던 패도(佩刀)와 궁시(弓矢)가 있다. 외지에서 관광 온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광양의 토속음식으로는 재첩국·약오리탕·광양숯불고기 등이 있다.

광양제철과 연관공단의 조성으로 외지인들의 왕래가 빈번해 호텔·여관을 비롯한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잘 갖추어져 관광에 편리하다. 명승관광지가 많지 않기 때문에 관광객의 수효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나, 백운산은 동백림군락지도 있으며, 산업시찰을 하기 위해 광양제철을 견학하는 사람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

지역축제로는 백운산고로쇠약수축제·전어축제·광양숯불구이축제 등이 열리고 있다.

읍·면
  1. 광양읍(光陽邑)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읍. 면적 54.85㎢, 인구 4만 9720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읍내리이다. 본래 광양군 지역으로 이곳에 우산(牛山)이 있다 해 그 이름을 따서 우장면(牛藏面)이라 해 성내(城內)·동외(東外)·과목(果木) 등 1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칠성면(七星面)의 신기(新基)·당촌(堂村)·마산(馬山)·서외(西外)·성북(星北) 의 5개 리와 사곡면(紗谷面)의 와룡·관동·검단·강정 등 22개 리, 인덕면(仁德面)의 인서리, 골약면의 중양리 일부 지역을 편입해 광양군의 이름을 따서 광양면이 되어 1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46년인덕면의 전 지역인 인서·인동·도월·덕례·세풍의 5개 리를 병합해 15개 리가 되고, 1949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동부는 300∼500m의 산지이고, 서부는 100m 이내의 낮은 구릉지이며, 그 사이를 동천과 서천이 흘러가면서 넓은 퇴적평야를 이루는 지역에 광양읍 시가가 전개되어 있다. 남부 해안에는 간척지가 넓다. 다도해의 영향을 받아 해양성 기후를 나타낸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원예작물 등이다. 겨울의 온화한 기후 속에서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오이·토마토 재배가 활발하다. 광양읍은 전국적으로 오이의 촉성재배지 및 밤 산지로 알려져 있다.

은장도가 광양읍에서 제작·생산되며, 또 우리 전통의 각궁과 화살인 궁시도 만들어지고 있다. 토속음식으로는 광양숯불고기와 약오리탕이 유명하다. 전통 참숯을 이용한 숯불구이축제가 1999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 교통은 경전선(慶全線) 철도가 읍의 남부를 동서로 통과하며 남해고속도로가 북부를 통과하고, 국도 또한 순천과 하동으로 연결되어 육상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우산리에 광양향교·봉양사, 읍내리 등지에 걸쳐 있는 광양읍성터, 임진왜란 때 광양지역의 의병이 왜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축조했다고 전해지는 용강리의 마로산성이 있고, 인동리의 유당공원에는 천연기념물인 이팝나무가 있다. 이 밖에도 못 주변에 수십 그루의 팽나무·느티나무·버드나무 등 150여 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8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2개 교, 광양보건대학교, 한려대학교가 있다.

읍내(邑內)·구산(龜山)·칠성(七星)·우산(牛山)·목성(木城)·초남(草南)·익신(益申)·죽림(竹林)·용강(龍江)·인동(仁東)·인서(仁西)·도월(道月)·세풍(世豊)·덕례(德禮)·사곡(紗谷)의 15개 리가 있다.

  1. 다압면(多鴨面)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63.62㎢, 인구 1,86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고사리이다. 본래 광양군 지역으로 다사리(多士里)와 압척리(鴨尺里)의 이름을 따서 다압면이라 해 관동(官洞)·고사(古士)·항동(項洞)·죽천(竹川)·신기(新基) 등 1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7개 리와 고사·도사 등 5개 리로 개편되었다.

면의 지형적 특색은 동쪽이 섬진강에 접하고, 남쪽과 서쪽에 백운산과 그 지맥이 길게 뻗어 있어 동서의 폭이 좁고 남북의 길이가 길다. 섬진강 건너 북쪽에 지리산괴(智異山塊)가 있고, 면의 남서쪽에 백운산이, 남쪽에 불암산이 솟아 있어 면 전체가 험준한 산지로 되어 있으며 산간분지나 평야는 없다.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가는 지류와 섬진강 서쪽의 연안에 약간의 경작지와 취락이 형성되어 있으며, 도사리가 비교적 넓고 비옥한 들이다.

전라남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고 교통이 불편한 지역이나, 다압면을 끼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 도로가 달리고 있어, 강변에 넓게 퍼져 있는 은빛 모래와 푸른 강물이 주변의 수려한 산줄기와 어우러져 있는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하동군 화개면을 왕래하는 수단으로 강의 양안에 매어 둔 줄을 잡아당겨 이용하는 나룻배가 운행되었으나 지금은 사라졌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참깨·들깨 등이다. 특히 밤과 매실이 많이 생산된다. 매실은 과실로서만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엑기스·매실장아찌·매실음료로 가공되기도 한다. 금천리에서 인삼이 재배되고, 도사리에서는 싸리 가공품이 생산된다. 양봉이 성행해 벌꿀의 생산이 많다. 섬진강변에서 갱조개잡이로 건져 올린 재첩이 유명한 지역 특산품이다. 매년 3월에는 섬진강변에 조성된 10만여 평의 매화 군락지에서 매화문화축제를 열고 있다.

문화유적은 섬진강변의 도사리 섬진마을 앞에, 1593년 나주목사로 있던 정설(鄭渫)이 1597년 충청감사를 그만두고 별서(別墅)로 건립했다는 수월정유허비(水月亭遺墟碑)가 있다. 그 주변에는 섬진(蟾津)이라는 이름의 유래와 관련이 있는 4마리의 두꺼비가 서로 다른 모양으로 조각되어 세워져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고사(高士)·도사(道士)·금천(錦川)·신원(新院)·하천(荷川) 등 5개 리가 있다.

  1. 봉강면(鳳岡面)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55.59㎢, 인구 2,12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봉당리이다. 본래 광양군 지역으로 며내면(0xF445內面)이라 하다가 비봉산의 이름을 따서 1904년봉강면으로 개칭되어 당저(堂底)·조양(朝陽)·하봉(下峰)·상봉(上鳳) 등 36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칠성면의 마산리(馬山里) 일부와 순천군 서면의 학동(鶴洞) 일부지역을 병합해 7개 리로 되었다.

면의 동쪽과 서쪽 및 북쪽으로 높이 600∼700m의 험준한 산지가 둘러싸고 있고, 중앙부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봉강천을 향해 사면(斜面)을 이루며, 좁고 긴 계곡이 발달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참깨 등이고, 원예농업으로 오이·토마토가 많이 재배된다. 토속음식으로 표고부침과 더덕무침이 있다. 관광자원으로는 백운호에 수상스키장이 있고, 인근에 골프장이 있다.

문화유적은 조령리의 백운산 도솔봉에 성불사지가 있는데, 1691년(숙종 17)에 광양현감 임후석(任後錫)이 이 절에 들러 시를 지었다고 전해지며, 1962년 옛터에 다시 절을 세우고 성불사라 하였다. 석사리에는 서소정(西笑亭)·거연정(居然亭)·송윤정(松潤亭)·양파정(陽坡亭)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봉당(鳳堂)·구서(具書)·부저(釜楮)·신룡(莘龍)·조령(鳥嶺)·지곡(紙谷)·석사(石社) 등 7개 리가 있다.

  1. 옥곡면(玉谷面)

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면. 면적 40.30㎢, 인구 3,38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금리이다. 본래 광양군 지역으로 옥실·옥곡 또는 고려 때 옥고소가 있었으므로 옥고소로 불려 오다가 1895년광양현이 광양군으로 승격되면서 옥곡면이 되어 신진(新津)·금촌(錦村)·의암(衣巖)·신기(新基) 등 2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27개 리에 골약면(骨若面) 와우리의 일부를 병합해 8개 리로 개편되었다.

서쪽에 국사봉이 있으나 대부분의 지역이 200∼600m의 산지이며, 북서부에서 발원해 동남으로 흐르는 묵백천(墨柏川) 하류에 넓은 간척지가 있다. 농업이 주업이며,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두류·메밀·참깨 등이고 밤·호두·대추·도토리·은행 등도 생산된다. 원예농업으로는 오이·토마토·고추 등을 생산하며, 온화한 기후 때문에 단감나무가 많다.

교통은 남부에 경전선과 남해고속도로가 통과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신금(新錦)·광영(廣英)·원월(元月)·대죽(大竹)·묵백(墨柏)·장동(莊洞)·선류(仙柳)·수평(水坪) 등 8개 리가 있다.

  1. 옥룡면(玉龍面)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66.28㎢, 인구 3,14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운평리이다. 본래 광양군 지역으로 옥룡사의 이름을 따서 옥룡면이라 해 상평(上坪)·하평(下坪)·상운(上雲)·하운(下雲) 등 3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사곡면(紗谷面)의 기두리(機頭里) 일부지역을 편입해 8개 리로 개편되었다.

북부경계지역에 백운산이 있고, 여기에서 발원한 동천이 남으로 흐르면서 경사가 완만한 추산리와 죽림리의 일대에 좁은 평야를 형성할 뿐, 그 밖의 지역은 모두 험준한 산악지대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참깨 등이며, 원예농업으로 오이·토마토·고추·양송이 등이 많이 생산된다. 산지에서는 목단·작약·황기·오미자 등의 한약재가 생산되고, 백운산의 꿀과 표고버섯이 토산품으로 유명하며, 백운산 기슭에서 채취한 고로쇠약수가 명성을 얻고 있다. 동곡리에서는 매년 경칩 무렵에 고로쇠 약수가 풍성하게 나오도록 산신에게 기원하며 고로쇠 약수를 제단에 올리는 백운산약수제가 열린다.

문화유적은 운평리에 중흥사와 중흥산성(中興山城)이 있으며, 추산리의 옥룡사지에는 동진대사보운탑비(洞眞大師寶雲塔碑)와 선각국사증혜등탑비(先覺國師證慧燈塔碑)가 있고, 백계산의 동백림이 아름다워 봄철에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그 밖에 동곡리에 백운사(白雲寺)·송천사(松川寺)·학사대(學士臺)·상백운암(上白雲菴)이 있고, 기우제를 지냈던 용소가 있다. 또 운곡리에 암연정(巖淵亭), 용곡리에 용산정(龍山亭)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운평(雲坪)·동곡(東谷)·산남(山南)·추산(秋山)·죽천(竹川)·용곡(龍谷)·율천(栗川)·운곡(雲谷) 등 8개 리가 있다.

  1. 진상면(津上面)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65.48㎢, 인구 3,18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섬거리이다. 본래 광양군 지역으로 차의진(車衣津)의 위쪽이 되므로 진상면이라 해 청룡(靑龍)·목과(木果)·입암(立巖) 등 32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7개 리로 개편되었다.

소백산맥의 남단에 위치한 험준한 산악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동쪽에는 불암산·갈기봉, 북쪽에 매봉 등이 있다. 백운산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흐르는 수어천이 관통하고 그 하류에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고, 최근에는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원예작물로 오이·토마토 등이 재배되며, 특산물로는 밤과 표고버섯이 생산된다. 백운산에서 봄에 채취한 고로쇠약수가 유명하며, 한봉과 한우사육도 행해진다.

시냇물이 맑고 깨끗한 데다 산의 자태도 수려한 어치계곡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백운산의 다른 계곡들과 달리 교통이 불편해 찾는 사람이 많은 편은 아니나 여름에는 피서객이 많다. 비평리에는 여천과 광양공업단지의 용수원으로 이용하기 위해 1978년에 준공한 수어댐이 있고, 백제시대 산성인 광양 불암산성(전라남도 기념물, 1999년 지정)이 있다.

교통은 남동부를 남해고속도로와 경전선이 통과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섬거(蟾居)·금이(錦梨)·비평(飛坪)·어치(於峙)·지원(旨元)·청암(靑巖)·황죽(黃竹) 등 7개 리가 있다.

  1. 진월면(津月面)

군의 동쪽 끝에 위치한 면. 면적 37.16㎢, 인구 3,32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선소리이다. 본래 광양군 지역으로 1895년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수어천의 숭어쏘나루터 아래쪽에 있다 해 진하면(津下面)이라 했고, 광양에서 하동으로 가는 관행길의 아래쪽이므로 하도면(下道面)이라고도 불렀다.

선소(船所)·이정(狸井)·내망(內望)·외망(外望)·구룡(九龍)·장재(長在) 등 19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포면(月浦面)의 월포·문암(文巖)·월등(月嶝)·가길(加吉)·금동(琴洞) 등 14개 리를 병합해 10개 리로 개편, 관할하고 진하·월포의 두 면 이름을 따서 진월면이 되었다.

남부에 망덕산이 있으며, 동부와 남부는 지형이 낮고 북부와 서부는 200∼300m의 산지로 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고추·참깨 등이다. 섬진강 하구에서는 장어가 많이 잡히고, 해안에서는 굴·백합 등 조개류의 양식이 이루어지나 생산량이 감소하고 있다. 한때 광양만에서 김 양식이 활발했으나 지금은 해조류의 생산량이 거의 없다. 뱀장어구이와 자와젓·참게젓이 이곳 토속음식으로 이름이 나 있다. 망덕포구 신답마을에는 전어잡이놀이·노래가 전승되고 있다.

도로는 순천과 경상남도 하동을 잇는 국도가 면의 북부를 동서로 지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선소(船所)·망덕(望德)·마룡(馬龍)·송금(松琴)·신구(新鳩)·신아(新鵝)·오사(烏沙)·월길(月吉)·진정(眞亭)·차사(車蛇) 등 10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3)
『지방행정구역연감』(한국도시행정연구소, 2003)
『한국지방자치백서』(한국언론인협회, 2002)
『내고장의미찾기 전남』(한국이동통신전남지사, 1995)
『광양군의 문화유적』(순천대 박물관, 1993)
『마을유래지』(광양군, 1988)
『광양군지』(광양군지편찬위원회, 1983)
『한국지명요람』(건설부국립지리원, 1983)
『전라남도지』 1·2·3(전라남도지편찬위원회, 1982·1983·1984)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82)
『내고장전통가꾸기』(광양군, 1981)
광양시(www.gwangyang.go.kr)
광양교육청(www.jngyed.go.kr)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