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천로(天老). 구강(具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병조참의 구신충(具信忠)이고, 아버지는 생원 구이(具頤)이며, 어머니는 덕수이씨로 현감 이의영(李宜榮)의 딸이다. 형은 구수복(具壽福)이며, 조광조(趙光祖)의 조카사위이자 문인이다.
1519년(중종 14) 생원시에 합격, 1528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저작(著作)·박사·정언(正言)을 역임하였다. 1533년 부수찬(副修撰)으로서 경연검토관(經筵檢討官)이 되어 기묘사화 때 화를 당한 사림파의 서용(敍用)을 주장하다가 파직당하고, 김안로(金安老)의 모함으로 용천에 유배되었다.
1537년 김안로가 사사되자, 다시 서용되어 헌납(獻納)·지평(持平)·교리(校理)·응교(應敎)·직제학(直提學)·강릉부사·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1543년 대사간에 올라 윤임(尹任)의 대윤과 윤원형(尹元衡)의 소윤이 각기 당여(黨與)를 이루어 대립함을 지적하였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1546년(명종 1)에 일시 파직되었다가 전라감사로 재서용된 뒤, 1548년에 대사헌이 되어 권신 이기(李芑)를 탄핵하다가 삭직되었다. 그리고 1550년 일찍이 유관(柳灌)을 변호한 바 있다고 하여 윤원형의 사주를 받은 대간의 탄핵으로 갑산에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었다.
1567년(선조 즉위년)에 신원(伸寃: 억울하게 지어진 죄가 회복됨)되었다. 어려서부터 성리학에 몰두하여 명망이 있었고, 강직한 언론을 통하여 기묘사림파에 대한 신원의 길을 열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