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진경(震卿), 호는 청암(靑巖). 할아버지는 증 영의정 권사빈(權士彬)이며, 아버지는 우찬성 권벌(權橃)이다.
약관으로 향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였다. 헌릉참봉(獻陵參奉)에 음서(蔭敍)되었으며, 1542년(중종 37)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547년(명종 2) 소윤 윤원형(尹元衡)이 대윤 윤임(尹任) 일당을 몰아낸 것을 비방하는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관련되어 아버지가 삭주로 귀양갔다가 1년 만에 죽자, 사섬시직장(司贍寺直長)을 버리고 20년 동안 두문불출하였다.
선조 때 아버지의 무죄가 밝혀져 복관되자, 다시 벼슬길에 나와 관직이 군수에 이르렀다. 그러나 벼슬을 사양하고 전원으로 돌아가 계곡 위에 석천정사(石泉精舍)를 짓고 산수를 즐기면서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