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예천(醴泉). 자는 효백(孝伯), 호는 송당(松堂). 권섬(權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권군보(權君保)이고, 아버지는 목사 권상(權詳)이며, 어머니는 임경종(任敬宗)의 딸이다.
1408년(태종 8)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1427년(세종 9) 문과중시에 역시 을과로 급제하였다. 검열로 벼슬을 시작하여 1418년(태종 18) 헌납이 되었다. 1419년 병조정랑으로 경차관(敬差官)의 임무를 띠고 대마도 정벌군의 제장(諸將)과 선박들의 운용을 감독하였다.
이어 1421년 장령이 되고, 이듬해에는 강원도와 평안도에 기근이 들어 굶어죽는 자가 많이 생기자 의정부사인으로서 강원도에 파견되어 그들을 구휼하였다. 1425년 강원도찰방으로 나갔다.
1430년에 우사간, 이듬해 동부대언(同副代言), 1434년 좌승지, 1437년 형조참의, 1441년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 경상도관찰사를 거쳐 동지중추원사·한성부윤·공조참판 등을 지냈다. 특히, 세종 때에는 아악 정리사업에 심혈을 기울여, 음악가 박연(朴堧)의 의견을 따라 세종의 악장사업에 적극 협력하였다.
1450년(문종 즉위년) 이조판서로서 의창제도의 근본적인 모순과 운영의 불합리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한편, 관리들의 부정·부패·비리를 엄격하게 척결, 추방할 것을 건의하였다. 그뒤 행중추원부사(行中樞院副使)를 역임하였다. 시호는 제평(齊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