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중(士重), 호는 강파(江波). 영해현 인량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권찬(權瓚)이며, 어머니는 전의이씨로 이겸익(李謙益)의 딸이다.
1669년(현종 10)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집으로 돌아와 시묘하였다. 1672년에 성균관에 등용되어 이듬 해 전적(典籍)·선교랑(宣敎郎)·사헌부감찰 등을 지냈다. 이어서 병절교위(秉節校尉)로 충무위부사정(忠武衛副司正)을 거쳐 선전관사용(宣傳官司勇)이 되었다.
1675년(숙종 1) 공조정랑에 춘추관기주관(春秋官記注官)을 겸임하였다. 이어서 성균관직강·호중어사(湖中御史) 등을 역임하고 이천지방을 암행하던 중, 고성현령의 임명을 받았다. 1679년 예조정랑을 거쳐 해남현감이 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않았다.
이듬 해에 풍기군수·군기시부정(軍器寺副正)·사도시정(司䆃寺正)·봉상시첨정(奉常寺僉正)·제용감정(濟用監正) 등을 지냈다. 1692년 승문원판교에 춘추관편수관을 겸하였고, 이듬 해 벼슬을 사직하고 향리에 돌아와서 후학을 지도하여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다.
평생을 애민과 치기에 노력하여 외지에서는 군민들의 칭송을 들었고, 조정에서는 상사의 사랑을 받았다. 저서로는 『강파문집(江波文集)』 3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