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무회(無悔), 호는 만주(晩洲). 아버지는 성균관생원 권염(權濂)이며, 어머니는 무안박씨(務安朴氏)로 박이상(朴履相)의 딸이다. 청송군 안덕리(安德里)에서 태어났다.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약관에는 문명이 널리 알려져 스승의 총애를 받았다.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1777(정조 1)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1781년 부친의 병으로 향리로 돌아갔다. 경(敬)을 학문의 관건으로 생각하여 하루 종일 고요히 앉아 심사숙고하였다.
사람이 정양하지 않으면 사물의 기미(幾微: 낌새)를 관찰할 수 없고 추구하지 않으면 이치를 깨달을 수 없다고 가르쳤다. 음양술수의 학문과 병가·산수 등에 이르기까지 통하지 않음이 없었다. 정조의 구언에 따라 만언소(萬言疎)를 올려 치국의 원리를 주달했다. 저서로는 『만주문집(晩洲文集)』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