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채 ()

유교
인물
조선 전기에, 대사성, 우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여서(汝鋤)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399년(정종 1)
사망 연도
1438년(세종 20)
본관
안동(安東)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대사성|우승지
정의
조선 전기에, 대사성, 우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여서(汝鋤). 아버지는 제학(提學) 권우(權遇)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판사(判事) 홍빈(洪贇)의 딸이다. 또한 조선 초기 유학의 대가인 권근(權近)의 조카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문장에 뛰어난 재질이 있었으며, 가학(家學)을 이어받아 경전을 깊이 연구하였다. 1417년(태종 17) 사마시에 합격하고, 그 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425년(세종 7) 집현전수찬에 임명되었고, 1427년 문과중시에 급제하여 집현전응교가 되었다.

그 해에 비첩(婢妾)을 학대한 죄로 부처(付處: 정해진 장소에 머물도록 하는 형벌)되었다가 얼마 뒤 석방되었다. 1430년 변계량(卞季良)의 추천으로 사가독서(賜暇讀書: 젊고 유능한 문신(文臣)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에 힘쓰도록 한 제도)하고, 1433년 대사성이 되어 송조고사(宋朝故事)에 따른 과거제도의 개선책을 건의하여 시행하도록 하였으며, 1435년에는 동부승지가 되고, 다음 해 우부승지가 되었다.

1438년 유호통(兪好通)·노중례(盧重禮)·박윤덕(朴允德) 등과 함께 『신증향약집성방(新增鄕藥集成方)』을 편찬, 간행했다. 그 해에 우승지가 되었으나 40세로 죽었다. 시문과 경학에 뛰어나서 세종의 극진한 예우를 받았으며, 『작성도(作聖圖)』를 저작하였다. 시문으로 당시 그의 종형인 권제(權踶)와 쌍벽을 이루었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국조방목(國朝榜目)』
『세종실록(世宗實錄)』
『안동권씨족보(安東權氏族譜)』
집필자
권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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