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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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학궤범 4권(13) / 근천정
악학궤범 4권(13) / 근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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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에 창작된 당악정재(唐樂呈才)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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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초기에 창작된 당악정재(唐樂呈才)의 하나.
내용

조선 초기에 창작된 당악정재(唐樂呈才)의 하나. 조선 초기에 당악정재의 양식을 도입하여 새로 창작한 춤에도 「금척(金尺)」·「수보록(受寶籙)」·「근천정」·「수명명(受明命)」·「하황은(荷皇恩)」·「하성명(賀聖明)」·「성택(聖澤)」의 일곱 가지가 있으며, 그 무보(舞譜)는 모두 『악학궤범』에 전한다.

「근천정」은 태종 2년(1402) 6월에 영사평부사(領司平府事) 하륜(河崙)이 「수명명」과 함께 악장(樂章)을 지어 올렸는데, 이를 관현(管絃)에 올려 연향악으로 쓰도록 하였다.

세종 때에는 회례연(會禮宴)·동지(冬至)·정조(正朝)와 8월과 9월의 양로연(養老宴) 등에 쓰였다. 그 곡조는 『의례경전통해시악(儀禮經傳通解詩樂)』 중 「남산유대(南山有臺)」의 곡을 따다 썼는데, 하륜이 지은 악장은 태종이 잠저 때 중국 조정에 들어가 천자의 권례(眷禮)를 받고 돌아오니 나라의 노유(老幼)가 모두 기뻐하여 지었다는 내용이다.

반주 음악은 「오운개서조인자(五雲開瑞朝引子)」·「최자령(嗺子令)」·「금전악령(金殿樂令)」·「중강령(中腔令)」 등 당악곡(唐樂曲)을 사용하였다.

구성 인원은 인인장(引人仗) 등 21명, 죽간자(竹竿子) 2명, 족자(簇子) 1명이 늘어선 가운데에서 선모(仙母) 1명과 협무(挾舞) 2명이 춤춘다. 먼저 죽간자 2명이 앞으로 나가서 구호를 부르고 물러나면, 선모와 협무가 족도하며 나갔다가 물러나고 선모가 치어(致語)를 한다.

치어가 끝나면 선모와 협무 두 사람이 근천정사를 금전악령의 악절에 따라 염수족도하면서 부른다.

춤이 끝날 무렵에는 죽간자 두 사람이 족자 좌우에 서서 구호를 올린 다음 족자와 죽간자를 든 사람이 물러난다. 이어서 선모와 협무가 춤추며 퇴장하는 것으로 춤이 끝난다.

참고문헌

『태종실록』
『악학궤범』
『신역 악학궤범』(이혜구 역주, 국립국악원, 2000)
『한국전통무용연구』(장사훈, 일지사,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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