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사군첩 ()

목차
회화
작품
김홍도(金弘道)가 1788년(정조 12) 정조의 어명으로 그린 화첩.
이칭
이칭
60폭금강산화첩
목차
정의
김홍도(金弘道)가 1788년(정조 12) 정조의 어명으로 그린 화첩.
개설

‘금강사군첩(金剛四郡帖)’이라는 명칭은 널리 알려진 조희룡(趙熙龍)의 『호산외사(壺山外史)』에 나오는 ‘명사금강사군산수(命寫金剛四郡山水)’라는 구절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 화첩이 포함하는 지역은 4개 군(郡)뿐만 아니라 남으로 평해(平海) 월송정(越松亭)에서 북으로 안변(安邊) 가학정(駕鶴亭), 그리고 금강산 접경지역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따라서 ‘사군첩(四郡帖)’이라는 명칭보다는 ‘김홍도필 금강산화첩(金弘道筆 金剛山畵帖)’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조선시대에는 ‘해산첩(海山帖)’이라고도 불렀다.

내용

이 금강산화첩은 김홍도가 44세 때 김응환(金應煥)과 함께 다닌 금강산 및 관동8경 지역을 그린 것이다. 김홍도는 여행에서 그려 온 초본(草本)에 의거해 채색횡권본(彩色橫卷本)과 화첩본(畵帖本, 5권 70폭) 두 가지를 정조에게 진상했다.

그 중 횡권본은 정조가 이덕무(李德懋)와 서유구(徐有榘) 등 신하들에게 보여 주며 제화시(題畵詩)를 짓게 하기도 했으나 그 후 화재로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화첩본은 순조가 1809년(순조 9) 매제인 영명위(永明尉) 홍현주(洪顯周)에게 하사하였다. 홍현주의 수장품은 나중에 아들 홍우철(洪祐喆)에게 전해졌으나 그 이후의 전래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이상과 같은 이 화첩의 제작경위와 전래상황 등에 대해서는 강세황(姜世晃)의 「유금강산기(遊金剛山記)」와 「송김찰방홍도김찰방응환서(送金察訪弘道金察訪應煥序)」, 서유구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서유본(徐有本)의 『좌소산인문집(左蘇山人文集)』, 홍현주의 형인 홍석주(洪奭周)와 홍길주(洪吉周)의 문집 등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동주(李東州)의 『우리나라의 옛 그림』이나 1995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탄신 250주년 기념 특별전』을 통해 ‘금강사군첩’으로 소개된 60폭으로 이루어진 화첩은 김홍도의 진작(眞作)이 아닌 임모작(臨模作 : 글씨나 그림 따위를 본을 보고 그대로 옮겨 쓰거나 그린 작품)으로 판단된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화풍상 두 사람의 필치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60폭 금강산화첩은 뛰어난 화가가 정밀하게 임모하였기 때문에 김홍도 원작의 구도를 완벽히 보존하고 있고 화풍상의 특징도 상당히 잘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김홍도의 금강산도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 60폭 금강산화첩 외에도 이와 거의 유사한 40폭 금강산화첩이 전한다. 또 김홍도의 금강산화첩을 임모한 수많은 작품들이 전하고 있어 김홍도가 후대에 미친 영향을 잘 보여 준다. 강세황의 『풍악장유첩(楓岳壯遊帖)』 중 몇 폭, 이의성(李義聲)의 『해산첩(海山帖)』, 이풍익(李豊翼)의 『동유첩(東遊帖)』, 필자미상(筆者未詳)의 『금강와유첩(金剛臥遊帖)』,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과 『해산도권(海山圖卷)』 등이 그 예이다.

이상의 작품들을 상호 비교하여 검토해 보면, 김홍도의 여정과 당시에 그렸던 금강산도의 내용을 복원해 볼 수 있다. 그 결과 김홍도의 여정은 한양(漢陽)→영동 9군(嶺東 9郡)→진양(淮陽)→내금강(內金剛)→외금강(外金剛)→회양(淮陽)→한양이었고, 당시 경치를 그린 75곳 이상의 지명을 확인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강세황의 「유금강산기」에 의하면 김홍도와 김응환은 당시 각자 1백여 폭의 초본을 그렸다고 한다. 이들 내용은 장차 김홍도의 금강산도와 임모작들이 더 밝혀지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의의와 평가

김홍도의 금강산화첩 제작은 그가 생애의 후기에 개성적이고 한국적인 산수화풍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 뿐 아니라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발전에 있어서 정점을 이루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단원 김홍도 연구』(진준현, 일지사, 1999)
『단원 김홍도』(오주석, 열화당, 1998)
『금강산도 연구』(박은순, 일지사, 1997)
「김홍도의 금강산도에 대한 고찰」(진준현, 『서울대학교박물관 연보』8, 1996)
『단원 김홍도 -탄신 250주년 기념 특별전-』(삼성문화재단, 1995)
『한국의 미 21 -단원 김홍도』(
『우리나라의 옛 그림』(이동주, 박영사, 1975)
『우리나라의 옛 그림』(이동주, 박영사, 1975)
『금강산도 연구』(박은순, 일지사, 1997)
『단원 김홍도』(오주석, 열화당, 1998)
「단원 김홍도」(정양모 감수, 『한국의 미』 21, 중앙일보사, 1985. 6)
『단원 김홍도 연구 노트』(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 1990)
『단원 김홍도』 -탄신 250주년 기념 특별전-(삼성문화재단, 1995. 12)
「김홍도의 금강산도에 대한 고찰」(진준현, 『서울대학교박물관 연보』 8, 1996. 12)
집필자
진준현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