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중용도가 ()

금강중용도가
금강중용도가
고전시가
문헌
조선후기 문신 김이익이 유배지인 금갑도에서 1821년에 저술한 가사집.
정의
조선후기 문신 김이익이 유배지인 금갑도에서 1821년에 저술한 가사집.
서지적 사항

1책(61장). 필사본.

내용

체재는 한문으로 지은 <금강중용도가서 金剛中庸圖歌序>와 그 한글번역인 <금강쥬ᇰ용도가서>, 그리고 <금강중용도가> 및 그 한문번역으로 되어 있다.

<금강중용도가서>는 산문인 데 비해 <금강중용도가>는 가사이다. 4음보 1구로 계산하면 전체 285구이며, 음수율에서는 3·4조와 4·4조가 우세하지만 다른 종류의 음수율도 많이 보인다.

<금강중용도가서>에서는, 금갑도(金甲島)의 귀향살이 6년 동안에 짓고 필사한 글이 40여 책이 되는데, 자신이 유배지로부터 돌아올 때에 가지고 온 것은 자손들로 하여금 자신의 경력을 알게 하려 함이라는 의도를 밝히고 있다.

또한 <금강중용도가서>에 따르면, 원고본 <금강중용도가>는 분실되고 황씨 부인의 전사본에 의거해서 저자가 재정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금강중용도가>의 내용은 5단으로 짜여져 있다. 제1단에서는 청춘시절을 다 허송하고 만년에 유배지에서 지나간 일을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한탄하면서, 몇 해 만에 얻어 본 ≪중용서≫ 한 권이 조리가 정연한 책이더라는 것을 노래하였다.

제2단에서는 ≪중용서≫가 중국에서 정리되고, 그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송시열(宋時烈)로 이어졌으나, 송시열이 죽은 지 백여년에 그 정통을 이은 자가 누구냐고 묻고, 주나라 무왕(武王) 후에 끊긴 도통(道統)이 정조에서 다시 밝았으나 49세로 단명하였음을 한탄하였다.

제3단에서는 작가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40세 후에 통적(統籍 : 궁문의 출입을 허락한 門籍)에 올라, 17년간 성주(聖主)를 모셨으나, 이제는 죄인이 되어 금갑도에 유배되었음을 묘사하였다.

제4단에서는 유배지에서 ≪주역≫ 한 질을 얻어 훈고(訓詁)까지 정리하여 5권으로 매어 몽중의 금강(金剛) 두 글자를 가져다가 제목으로 하여 읽어보려 하였으나, 동짓달 어려움으로 고생하였음을 진술하였다.

제5단에서는 겨울이 지나 봄이 되어, 주인이 ≪중용≫을 한 권 얻어주어 그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내는데, 몇 마디 되지 않으나 오묘한 논지가 어렴풋이 드러나므로, 애지중지하며 차마 감히 손에서 떼지 못하겠다고 술회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 작품은 당시의 시대상 및 사회상과 사대부의 유배생활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며, 역사의 이면, 즉 정조의 사망원인에 대해 살필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작자의 종손 태진(泰鎭)이 소장하고 있다.

참고문헌

「금강중용도가에 대하여」(강전섭, 『한국학보』 40, 일지사, 1985)
「금강중용도가」(강전섭, 『향토연구』 2, 충남향토연구회, 1986)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강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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