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곡대제(祈穀大祭)·기년제(祈年祭)·기풍제(祈豊祭)’라고도 불렀다. 농경국가에서 백성을 위하여 행해지던 중요한 행사의 하나이다. 그 기원은 중국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예기』에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말까지 지속되어 왔다. 처음에는 음력 정월 초하룻날 지냈는데, 조선시대에 와서 중국의 예를 모방하여 정월 첫 신일(辛日)에 지냈다.
기곡제에 관한 문헌상의 기록은 고려 성종 때 처음 나타난다. 『고려사절요』 권1에 983년(성종 2) 정월에 왕이 원구(圓丘)에서 기곡제를 친행하고, 후직(后稷)에게 제사하는 적전(籍田)을 마련하여 상례(常禮:일상의 예식)로 삼도록 지시한 대목이 있다. 그 뒤에 기록은 남기지 않았으나 해마다 정월이면 대신을 시켜 치제(致祭:임금이 제물과 제문을 내려 제사 지내는일)한 것으로 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1401년(태종 1) 정월 신축일(辛丑日)에 처음으로 원단(圓壇)에 친행하여 기곡제를 지냈으나 그 뒤에는 별도로 기곡제를 지내지 아니하고, 사직제를 지낼 때 함께 지낸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뒤 1683년(숙종 9) 이조판서 김수흥(金壽興)의 진언에 따라 기곡제를 다시 지내기로 결정하여 숙종이 사직단에 나가서 친제했고, 1696년 정월과 1733년(영조 9)·1734년·1769년 정월, 1779년(정조 3)과 1780년에 각각 기곡제를 친행한 기록이 있다. 또한, 1788년에는 기곡대제에 대한 비용문제를 협의하여 정미(定米) 41석으로 상례를 정한 일도 있다.
기곡제는 매년 정월에 상제(上帝)에게 지내는 기풍의례(祈豐儀禮)이나 이와 비슷한 성격을 지니는 농경의례로, 하늘에서 곡식을 주관하는 별인 영성(靈星)에 제사하는 영성제(靈星祭), 사람과 곡식을 해하는 신에게 지내는 포제(酺祭), 날이 가물어 곡식에 한재가 들 때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 입추 뒤까지 장마가 계속되어 흉년이 예상될 때 날씨가 개기를 비는 기청제(祈晴祭, 또는 禜祭), 눈이 와야 될 시기에 눈이 오지 않으면 다음해에 흉년이 든다고 하여 눈이 오기를 기원하는 기설제(祈雪祭) 등이 있었다.
이와 같이, 풍년을 기구하는 행사는 농사를 중심으로 직접 또는 간접으로 곡식을 보호하고,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던 농본국의 중농정책을 엿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