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

중앙기상대
중앙기상대
과학기술
단체
대기를 관측하고 예보하며, 기상과 기후 정보를 생산하고 연구하는 중앙행정기관.
정의
대기를 관측하고 예보하며, 기상과 기후 정보를 생산하고 연구하는 중앙행정기관.
개설

기상재해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살리고 재산을 보호하며, 산업 진흥 등 공공 복리증진을 위하여 기상과 기후, 그리고 지진에 대한 각종 예보와 정보를 발표하고, 이에 필요한 연구 개발과 국제 협력을 수행하고 있는 환경부 외청 소속의 중앙행정기관이다.

연원 및 변천

우리나라 기상청의 역사를 보면 삼국시대에 일관(日官)·일자(日者) 등의 관직이 있었고, 고려 초에는 태복감(太卜監)과 태사국(太史局)이라는 기관에서 역수(曆數)·측후·각루(刻漏)의 일을 맡아보았으며, 1308년에 서운관(書雲觀)으로 통합되었다. 서운관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졌으며, 세조(1466년) 때 관상감(觀象監)으로 개칭되었다. 관상감은 조선시대 말까지 행정관청인 동시에 연구기관이었고, 또한 관측소와 교육기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였다. 고종 때는 관상감이 관상국을 거쳐 관상소로 변경되었다. 1907년에 통감부관측소와 부산, 목포, 원산, 용암포, 성진 등에 지소가 설치되면서, 관상소는 폐지되었다.

광복 이후 미군정청은 문교부 산하에 관상국(觀象局)을 두었고, 그 책임자로 미군장교 국장 외에 한국인 국장으로 당시 연희대학교 교수인 이원철(李源喆) 박사(재임기간:1945.8~1961.5)가 취임하였다. 1949년 8월 중앙관상대로 개칭되었으며, 이때의 기구는 대장·부대장·총무과·예보과·관측과·통계과·천문과로 구성되었고, 지방에 24개 측후소(남한 14, 북한 10)가 있었다.

1945년 말부터 일기도(850hPa, 700hPa 고도면)를 작성하여 오늘과 내일에 대한 일기예보가 가능했으나, 북한과 중국의 기상자료를 얻을 수 없어 일기분석에 어려움이 많았다. 또한 1946년 이후의 정치적 혼란과 창군하기 시작한 육·해·공군의 기상요원으로 상당수의 중견간부와 기상기술자들이 퇴직 또는 전직하는 사태로 인하여 기상요원의 확보와 훈련이 시급하였다. 따라서 관상대 내에 6개월간의 단기 기상교육과정으로서 기상기술원양성소(氣象技術員養成所)를 설립하고, 1948년 9월에 제1회 수료생(21명)을 배출하였다.

한국 전쟁과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양성소 모집과 교육은 계속되었으며, 1952년에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가입하였고, 1956년에는 세계기상기구(WMO)에 68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하여 기상업무의 국제상호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56년 IGY(국제지구관측연도) 기간에 부산·울릉도·서울·제주 등의 지상관측 관련의 국제협력을 하였다.

1961년 8월 25일(법률 제700호) 「기상업무법」이 제정되었으며,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마련하여 기상 업무 수행의 골격을 갖추었다. 또한 1960년대에는 팩시밀리 수신이 시작되었고, 포항고층기상관측소·수원농업기상관측소·김포통신소와 측후소 등이 증설되었고, 1968년 12월 30일에 관악산레이더관측소가 설립되어, 최초로 기상레이더가 운영되었다.

1971년에는 공주 감영이었던 금영에서 사용한 측우기를 일본 기상청장 다카하시로부터 반환받았으며, 이 측우기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전해지고 있는 측우기(보물, 1971년 지정)이다. 1978년에 기상연구소가 설립되어 종관기상연구부·응용기상연구부를 두었다. 1979년에는 정지기상위성(靜止氣象衛星, GMS)과 위성수신장치(Tiros·N)가 설치되었다.

1982년 1월에 중앙기상대로 개칭되었고, 같은 해 4월 직제 개정으로 기상기술양성소장을 기상연구소장이 겸임토록 하였다.

1985년 기상연구소 조직을 5개 연구실로 개편하였고, 1986년부터 OECF 차관에 의한 장비 현대화 사업을 시작하였다. 또한 같은 해 배경대기감시계획의 일환으로 소백산관측소가 신설되었다.

1990년 12월에 중앙기상대가 기상청으로 승격됨에 따라, 수장이 1급 대장에서 1급 청장으로 승진하였다. 이 때 수치예보과를 신설하였으며, 기후국을 응용기상국으로 개칭하였다. 또한 측후소를 기상대로, 지방기상대를 지방기상청으로 개칭하였다.

1996년 충남 태안 안면도에 기후감시센터를 신설하였는데, 이는 1987년부터 소백산에서 수행했던 기후변화 감시업무를 본격화한 것이다. 또한 같은 해 집중호우 등의 소규모 악기상들을 효과적으로 추적, 감시하기 위하여 국지기상 연속감시시스템(주전산기 2대, 국지수집장치 68대, 표출용 W/S 80대)을 설치하였고, 같은 해 12월말부터 매분 단위로 전국 400대의 자동기상관측장비로부터 기온·바람·강우량 자료를 수집 분석하게 되었다.

1998년 12월에 청사를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월동에서 동작구 신대방동으로 이전하고, 슈퍼컴 NEC SX-5를 도입하였으며, 1999년에는 새로운 슈퍼급 전산기(NEC SX-5, 128Gflops)를 도입하여, 전지구 예측시스템(수평분해능 약 110km), 지역 예보시스템(수평분해능 30km), 태풍예보시스템(수평 분해능 약 20km), 그리고 파고 예보시스템을 운영하게 되었다.

현황

2003년 APEC(Asia-Pacific Economic Coorperation) 기후센터를 설립하고, 2004년 3월 세계기상의 날에 근대기상 100년 기념식을 서울 코엑스에서 거행하였다. 이와 함께 『근대기상 100년사』를 조사ㆍ집필하여 기상청이 차관급으로 승격되는 데 큰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기상정보통신망의 초고속화사업을 통해 전용회선망을 초고속국가정보통신망(ATM)으로 전환하였고, 영상회의시스템을 보강하여 각종 연구와 업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도록 하였다.

2005년 기상청이 차관급으로 격상되었고, 서해종합해양기상관측기지를 우리나라 최서단 섬인 북격렬비도(충남 태안군 근흥면 기의도리)에 구축하였으며, 슈퍼컴 2호기를 도입하였다.

2007년에는 세계기상기구 집행이사국으로 진출하였고, 기상관측표준화법이 제정되었으며, 황사관측망이 확충되었다.

2008년에는 환경부 외청으로 소속이 변경되었으며, 동네예보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2009년에 국가기상위성센터와 국가기상슈퍼컴퓨터센터를 신설하고, 기상산업진흥법을 제정하였으며, 외국인 예보관을 영입하여 기상업무의 선진화를 도모하였다.

2010년 4월에는 기상레이더센터를 신설하였고, 8년 여의 준비를 거친 국내 최초의 통신·해양·기상위성인 ‘천리안위성’을 2010년 6월 27일 남미에 있는 기아나의 꾸르 우주센터에서 발사하는데 성공하여 세계 7번째 정지궤도위성 보유국이 되었고, 그동안 위성자료 수혜국에서 제공국으로 국가의 위상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2011년 5월 30일에는 먼바다에서 종합 관측할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기상관측선인 ‘기상1호’가 취항하였고, 세계기상기구(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 WMO)의 전지구정보시스템센터(Global Information System Centre, GISC)를 서울에 유치하였다.

기능과 역할

지상과 해양, 위성 등에서 관측한 기상자료와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통해서 고층·해양·항공·레이더·지진 등 분류별로 기상관측과 예보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개발도상국에 기상기술을 지원하고, 세계 각국과 교류하고 협력함으로써 국내 뿐만 아니라 지구촌 기상재해를 없애는데 기여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일기예보 업무를 넘어 기후변화의 시대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국가기상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참고문헌

『기상연감』, (기상청, 2000년~2010년)
『기상역사자료집』(기상청, 2010)
『서울대학교 기상학/대기과학 50년사』(기상학과, 2008)
기상청(www.km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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