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목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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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시중론 / 기우목동가
적멸시중론 / 기우목동가
고전시가
작품
조선 초기에 승려 지은(智訔)이 지은 경기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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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초기에 승려 지은(智訔)이 지은 경기체가.
내용

조선 초기에 승려 지은(智訔)이 지은 경기체가. 작자가 그의 ≪적멸시중론 寂滅示衆論≫을 12장의 장편 경기체가로 지은 것으로, ≪적멸시중론≫에 수록되어 있다. 작자의 생몰년은 확실하지 않다.

≪적멸시중론≫의 말미에 의하면 대시주명(大施主名) 다음의 증명(證明)에서 효령대군(孝寧大君)과 김수온(金守溫) 등의 인물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세조 때 사람으로 짐작될 뿐이다. 이에 창작연대도 세조 연간으로 추측된다.

≪적멸시중론≫은 적멸·해탈의 경지를 산문으로, <기우목동가>는 산문내용을 운문으로 읊은 것이다. <기우목동가>는 송나라 곽암사원(廓庵師遠)이 지은 <십우도송 十牛圖頌>(자기의 본심을 소에 비유하여 그 본심을 찾아 진리를 깨닫는 순서를 노래한 한시)의 차례에 맞추어 불교에서의 견성(見性)과 열반의 경지를 체계적으로 읊었다.

제1·2장은 <십우도송>의 제5 ‘목우(牧牛)’로서 소의 고삐를 잡고 길러 순화시킨 모습으로, 몸의 수련을 계속하여 깨달은 이후의 조심을 비유했다. 제3·4장은 제6 ‘기우귀가(騎牛歸家)’로 이미 길들인 소를 탄 목동이 노래부르며 안온한 자기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다.

감정의 정신작용과 망상의 굴레를 탈피하여 본래부터 지니고 있던 심우(心牛)를 타고 정신적 고향으로 돌아감을 비유한 것이다.

제5·6장은 제7 ‘망우존인(忘牛存人)’으로 이미 정신적 고향으로 돌아와 자기가 붙잡고 있는 소를 잊어버리고 자기만 생각하는 것으로, 본각무위(本覺無爲)의 정신적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더 수련할 필요가 없는 상태를 비유했다.

제7·8장은 제8 ‘인우구망(人牛俱忘)’으로 이미 소를 잊고 다시 자신까지도 잊어 사람과 소가 모두 비어 있음을 말하였다. 범인과 성인이 함께 종적을 감추고, 중생과 불(佛)이 함께 공(空)한 상태에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제9·10장은 제9 ‘반본환원(返本還源)’으로 하나의 티끌도 남아 있지 않은 경지를 노래한 것이다. 본심이 원래 청정하여 달빛이 밝고 바람이 맑으면 번뇌도 망념도 없이, 봄이 오면 백화가 난만하고 가을이 오면 천산이 붉게 단풍이 들어 제법실상(諸法實相)을 체득하게 됨을 비유했다.

제11·12장은 제10 ‘입전수수(入廛垂手)’이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자기 손을 드리워 시전(市廛)의 세속세계에 들어가는 것으로, 나와 남을 모두 이롭게 함을 비유했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노래는 조선 초기 불교계통의 경기체가로 오도적멸(悟道寂滅)의 순서와 그 경지를 노래로 읊고 있다.

형식은 두 가지 측면에서 특징적이다. 하나는 ‘3·3·4, 3·3·4, 4·4·4’의 형식이 ‘4·4·4, 4·4·4’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작품 마지막의 ‘위……경기 어떠하니잇고’가 ‘위 景我好下ᄉᆞ阿彌陀佛(경아호하사아미타불)’로 바뀐 점이다.

경기체가의 작가 중에 승려도 포함되었다는 사실과, 경기체가 형식이 불문(佛門)에서도 수용된 사실, 그리고 그 변용형태 등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참고문헌

『적멸시중론(寂滅示衆論)』
「조선음악과 불교」(안자산, 『불교』 71, 1930)
「별곡체가연구」(김창규, 『국어교육연구』 3, 1971)
「의상화상의 서방가연구」(김문기, 『동양문화연구』 5, 1978)
「기우목동가연구」(김문기, 『어문학』 39,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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