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양안(量案)에 수록된 토지에 대한 정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기경전(起耕田) 혹은 진전(陳田) 여부, 전품(田品), 결부(結負)의 수와 함께 해당 토지의 ‘주(主)’로 기재되는 이름을 꼽을 수 있다. 경자양전(庚子量田) 이후로는 대개 해당 토지가 기경전이면 ‘起主 ○○○’ 또는 ‘起 ○○○’ 등으로, 진전이면 ‘陳主 ○○○’으로 표기하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경자양안의 기주 표기는 금(今)과 구(舊) 2가지 정보를 모두 수록하도록 되어 있었다. 전자는 경자양전 때의 ‘주’, 후자는 갑술양전(甲戌量田) 당시의 ‘주’인데, 갑술양전의 정보가 없는 사례도 많았다. 또한 ‘주’ 이외에 ‘시(時)’ 혹은 ‘시작(時作)’이 기재되는 사례들도 있었다. 이러한 ‘주’의 기재 양식은 진전도 다를 바가 없었다.
양안에 대한 초기 연구에서 양안에 ‘주’로 등재된 이름은 농가 세대를 대표하는 해당 토지 소유주의 실제 이름이라고 간주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 혹은 ‘시작’으로 기재된 이름은 해당 토지의 경작자로 이해되었다. 즉, ‘주’만 기재된 경우는 해당 토지의 자작농으로, ‘주’와 ‘시’가 모두 표기된 경우는 전주(田主)와 작인(作人)의 관계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양안과 족보, 고문서 등을 활용한 연구에서는 농가 세대의 대표자가 아니더라도 경자양안에 ‘주’로 등재될 수 있었음을 밝혔고, 나아가 양안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대신 올리는 대록(代錄) 현상과 1명의 토지를 여러 이름으로 나누어 올리는 분록(分錄) 현상이 적지 않게 나타났음이 확인되었다.
당시 양반들은 양안뿐만 아니라 각종 부세(負稅) 대장(臺帳)에 이름을 올릴 때 자신들의 노비 이름을 대신 사용하였는데, 이를 호명(戶名)이라 하였다. 경자양안에 등재된 ‘주’의 이름이 모두 실명인 것은 아니었으며, 호명도 적지 않게 발견된다. 이러한 현상은 기주의 이름이 소유주의 실명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토지에 대한 각종 권리를 행사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던 상황을 반영한다. 그럼에도 경자양전에서는 이전에 비해 양전 과정에서 토지 소유주의 실명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강화되었다고 평가 받는다.
한편 최근에는 실명 여부와 무관하게 양안에서 ‘주’로 기재된 이름을 소유권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만은 없다는 견해가 제기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