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덕승(德承), 호는 구암(龜巖). 인동(仁同) 출생. 아버지는 김종효(金宗孝)이며, 어머니는 옥산장씨(玉山張氏)로 참의 장곤(張崑)의 딸이다.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뛰어나 7, 8세에 이미 경사(經史)에 능통하였고, 9세 때 고령 백일장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617년(광해군 9)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광해군의 난정을 꺼려서 정시(庭試)에 응하지 않고 후진의 교육에 힘쓰니, 많은 선비들이 배움을 청하였다.
1624년(인조 2) 강재(江齋)에서 강회를 여니, 먼 곳에서도 그의 학풍을 높이어 사모하는 선비들이 찾아와서 강론을 들었다. 1630년 관찰사의 추천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나가지 않았다.
주희(朱熹)의 『가례』에서 미비한 것을 보충하여 「상제십조(喪制十條)」를 저술하고, 『여헌선생문집(旅軒先生文集)』을 교열하였다. 1641년 서당이 좁아서 부지암정사(不知巖精舍)를 지어 교육하고, 신열도(申悅道)와 함께 강재에서 강론을 열어 후생을 지도하였다.
1653년 김응조(金應祖)의 추천으로 황산찰방(黃山察訪)이 되었으나 부임하지 못하고 죽었다. 예설과 역학을 깊이 연구하여 『예원집설(禮苑集說)』 2권과 「천문성상도(天文星象圖)」를 지었으며, 『구암문집(龜巖文集)』 4권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