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중경(重卿). 아버지는 내금위(內禁衛)를 지낸 김희(金喜) 이다.
경상도 언양(彦陽) 사람으로 1572년 별시2(別試2) 을과(乙科)에 합격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연안성(延安城)을 굳게 지켰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적은 서울과 평양을 함락시킨 뒤 그해 8월 왜장 오토모[大友吉統]가 배천(白川)·평산을 거쳐 연안을 향해 공격해오고, 구로다[黑田長政]는 평양에서 해주를 지나 연안으로 쳐들어왔다.
이때 연안부사로 있으면서 일단 적의 주력부대의 공격을 피하여 섬으로 가 있었다. 전 연안부사 이정암(李廷馣)이 황해도초토사에 임명되어 평산으로부터 연안에 도착하고, 배천사람 김덕함(金德諴)·박춘영(朴春榮)도 각지로 격문을 보내어 수백인의 의병을 모아 이에 호응하였다.
그리하여 의병장 주덕윤(朱德潤)·장응기(張應祺)·조광정(趙光庭) 등과 연합, 1,400여 인을 모았으며, 초토사의 조방장(助防將)이 되어 8월 28일부터 4일간에 걸친 대접전 끝에 5,000여 명의 왜적을 물리치고 성을 굳게 지켰다. 이때의 전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