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균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예조참판, 강원도관찰사,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중임(仲任)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549년(명종 4)
본관
경주(慶州)
주요 관직
동지중추부사
정의
조선 전기에, 예조참판, 강원도관찰사,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임(仲任). 할아버지는 김치세(金致世)이고, 아버지는 직제학 김천령(金千齡)이며, 어머니는 부수(副守) 김정(金丁)의 딸이다. 종숙인 지평 김인령(金引齡)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15년(중종 10) 진사가 되고, 1528년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세자시강원사서를 거쳐, 1531년에 홍문관수찬이 되어 당시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김안로(金安老)를 탄핵하였으나, 도리어 기묘사화를 일으킨 심정(沈貞)의 무리라고 탄핵당하여 삭직되었다.

그 뒤 1537년 김안로가 축출된 뒤 다시 서용되어 시독관·교리·홍문관부응교·사헌부장령·사간원사간·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1543년에는 사은사, 그 이듬해에는 천추사로 파견되었고, 예조참판으로 『중종실록(中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했으며,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동지중추부사로 재임 중 죽었다.

가문은 김천령·김만균·김경원(金慶元)의 3대가 모두 장원급제하였고, 둘째 아들 김명원(金明元)도 갑과 3인으로 급제하여 당시에 문명을 떨쳤다.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중종실록(中宗實錄)』
『명종실록(明宗實錄)』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국조방목(國朝榜目)』
『수곡문집(壽谷文集)』
『대동야승(大東野乘)』
집필자
이병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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