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 선천 출신. 1919년 평안남도 선천군의 천도교 대표로서 독립선언문을 인쇄하여 배포하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평양형무소에서 6개월간 복역하였다.
손병희(孫秉熙)가 죽자 그의 독립운동노선을 계승하기 위하여, 만주에서 이종훈(李鍾勳) 외 6명의 동지들과 함께 1922년 고려혁명위원회(高麗革命委員會)를 조직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6년 5월 만주 길림성(吉林省)에서 정의부(正義府)·형평사·고려혁명위원회 합동으로 만든 고려혁명당(高麗革命黨)의 간부로 활약하다가, 그해 12월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1928년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을 언도받고 복역하다가 1931년에 출감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옥고로 인한 병으로 죽었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