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김사룡(金士龍). 평안북도 태천 출신.
어려서부터 지략이 뛰어나 이목을 끌었다. 북부지방의 인사를 차별하는 조정의 처사에 불만을 품고 있던 중, 홍경래(洪景來)를 만나 반란계획에 찬동하여 가담하기로 결심하고 군사훈련 등 반란 음모를 도왔다. 1811년(순조 11) 혹심한 흉년으로 인심이 혼란해지자, 그해 12월 홍경래로부터 반군의 부원수로 임명되었다.
북군을 영솔하고 남으로 진격하여 곽산을 점령하였다. 그 뒤 홍총각(洪總角)의 남군과 정주에서 합세하여 전략적 요지인 안주를 공략하기 위해, 박천 송림리에 결집하였으나 증강된 관군에게 격파당하였다. 그 뒤 점령하였던 여러 고을도 차례로 함락되어 정주성에 모여 홍경래와 함께 최후의 항전을 하다가, 관군의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