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천(豊川). 호는 약전(藥田). 평안남도 평원 출신.
1919년 향리의 일신학교(日新學校)를, 1924년 평양 숭실학교를, 1930년에 일본 센다이시[仙台市] 도호쿠학원[東北學院]을 각각 졸업하였다.
1935년 3월 일본 구주대학(九州大學) 법문학부에서 서양근대사 공부를 마치고, 평양 숭실학교 교원이 되었으나 1938년 학교가 신사참배를 거절하여 폐교되자 해임되어 7년간 가업에 종사하였다.
학문적으로는 일제치하에 있는 동안 민족주의이론의 체계화에 몰두하였으며, 1945년 광복과 더불어 월남하였다. 1946년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가 되어 1973년 정년퇴직하였는데 다음 해인 1974년 다시 명예교수로 위촉되어 후진양성에 힘썼다.
1973년 이후부터는 경희대학교 특별명예교수직도 겸임하였다. 민족주의자·교수·인도주의자로서 주위로부터 영원한 대학인(大學人)이라 칭송받았으며, 평생을 학문연구에 전념하여 우리나라에 서양사학의 씨앗을 뿌리는 일의 선구가 되었다.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의 발전과 그 개화에 헌신한 당대의 일류논객이기도 하였다. 정치교수라는 누명을 쓰고 1965년 9월부터 1968년 2월까지 해직교수생활을 하였으며 수많은 명논설을 남겼다.
저서로는 『대학사(大學史)』·『독일학생운동사』·『역사와 현실』·『루터』·『내가 본 서양』·『안정의 논리』·『역사의 언덕에 서서』·『역사와 우상』이 있고, 유고집으로는 『김성식정치평론, 쓴소리 곧은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