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의성(義城). 서울 출생. 1907년주전원(主殿院)의 내취(內吹)로 임명된 취고수(吹鼓手)였으나, 1908년에 대금의 김계선(金桂善)과 함께 장례원의 악공(樂工)이 되었으며 이어 이왕직의 아악수를 역임하였다. 당시 아악부의 장구잡이에는 그밖에도 이성창(李聖昌)·황종순(黃鍾淳) 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성창은 노쇠하고 황종순은 솜씨가 부족하였다. 그의 고법(鼓法)은 전통을 바탕으로 연례악(宴禮樂)·가악(歌樂)·정재(呈才)에 이르기까지 아악(雅樂)의 모든 분야에 정통하였다. 김계선과 함께 조선정악전습소의 동인이었고 하규일(河圭一)이 주재하는 조선권번(朝鮮券番)의 대령악수(待令樂手), 즉 전속악인이기도 하였다.
거문고의 조이순(趙彛淳), 양금의 김상순(金相淳), 대금의 김계선, 단소의 조동석(趙東錫) 등 전습소 동인과 함께 취입한 정악(正樂)레코드가 남아 있고, 김계선과 함께 김일우(金一宇)라는 별명으로 라디오방송 출연도 자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