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강릉(江陵). 할아버지는 판예병부사(判禮兵部事) 김상기(金上琦), 아버지는 시중(侍中) 김인존(金仁存), 어머니는 경원군개국백(慶源郡開國伯) 이호(李顥)의 딸 이씨이다. 형제로 김영관(金永寬)·김영윤(金永胤)이 있다.
예종 때 음보로 양온서승동정(良醞署丞同正)이 되었고, 과거 급제 후 첨사부주부(詹事府注簿)를 거쳐 인종 초 합문지후(閤門祗候)·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가 되었다. 1133년(인종 11) 낭중(郎中)으로 사신이 되어 금나라에 가서 왕의 생신을 축하해 준 것에 사례하였다.
1148년(의종 2) 수문전학사(修文殿學士)가 되었고, 이어 이부상서(吏部尙書)가 되었다. 이듬해 삼사사(三司使)가 되었으며 1151년 정당문학(政堂文學), 그 이듬해 검교사도(檢校司徒)와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가 되었다.
1153년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동지공거(同知貢擧) 유석(劉錫)과 함께 곽원(郭元) 등 진사 30인과 명경(明經) 3인을 뽑았다.
1154년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판공부사(判工部事)가 되었다가 치사(致仕)했다. 동로병마사(東路兵馬使)를 세 번, 북로원수(北路元帥)를 한 번 역임하면서 잘 다스려 신망을 얻었으며, 일찍이 송나라와 신라의 의서(醫書)에서 기이하고 중요한 것을 뽑아 손수 편찬한 『제중입효방(濟衆立効方)』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