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운정(雲汀). 일본 동경고등상업학교를 2년 수학하고, 일본 신극의 대가인 시마무라(島村抱月) 밑에서 4여년간(1917∼1920) 극문학을 공부하였다.
그 뒤 귀국하여 『동아일보』의 창간과 함께 기자로 일하면서 희곡과 연극평을 썼고, 뒤에는 소설도 발표했다. 동아일보사에서 나와 경성일보 특파원, 동경의 호치신문 조선특파원, 시대일보 기자 등을 거쳐 1933년부터 조선방송협회 제2과장으로 재직하다가 죽었다.
1920년 4월에 「4인의 심리」라는 단막 희곡으로 등단한 이후 약 10여년 동안 작가로서 활동했으나, 문인으로서나 연극인으로서 별로 각광을 받지는 못했다. 1920년대 작가들이 그러했듯이 그도 역시 전통인습의 질곡으로부터의 해방과 식민지사회의 곤궁한 삶을 기자다운 시각과 의식을 가지고 표출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초기자본주의가 낳은 병폐라고 할 배금사상(拜金思想)을 비판하는 자연주의극 형식을 시도했고, 이기주의·황금만능사상을 비판하는 풍자극과, 서양식 가극을 쓰기도 했다. 그는 김우진(金祐鎭)과 함께 1920년대의 대표적 극작가라고 할 수 있다.
작품으로는 「15분간」·「기적(汽笛) 불 때」·「전변(轉變)」·「잔설(殘雪)」·「그 사람들」·「찬웃음」·「약수풍경(藥水風景)」·「꿈」 등 단막희곡 8편과 장편소설 「독와사(毒瓦斯)」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