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일(春日)’이라고도 한다. 682년(신문왕 2)에 신문왕이 문무왕을 위하여 동해변에 감은사(感恩寺)를 창건할 때, 동해 가운데 조그만 산(山)이 물결에 따라 감은사를 향하여 왔다갔다 함을 보고 왕명에 의하여 일관(日官: 觀象監의 관직)으로서, 점(占)을 쳐서 “문무왕이 바다의 용(龍)이 되어 신라를 지키고, 김유신(金庾信)은 33천(天)의 1자(子)로 하강하여 대신(大臣)이 되었는데, 이 2성(二聖)이 동덕(同德)으로 호국(護國)의 보배를 내놓으려 함이니 해변으로 행차하시면 반드시 무가(無價)의 대보(大寶)를 얻을 수 있습니다.”고 말하였다.
이에 신문왕은 감은사 앞 바다 속의 산에서 용이 건네준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얻어 국보(國寶)로 삼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