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보은(報恩). 자는 자반(子盤). 아버지는 참봉 김홍익(金弘益)이다. 의주 출신.
학문은 없었으나 무예가 뛰어나 김정(金淨) 등 여러 사람들과 교유하였으며 천거되어 찰방이 되었다.
구수복(具壽福)이 파면된 뒤 갈 데가 없어서 보은 산간에서 방황하는 것을 보고, 집과 밭을 주어 살도록 해주자, 그 지방 사람들이 의사(義士)라고 칭하였다. 후금(後金)에 쫓긴 명나라 장수 모문룡(毛文龍)이 가도(椵島)에 들어와 병사들과 함께 노략질을 심하게 하자, 노하여 수십인을 타살하였다.
이에 모문룡이 크게 노하여 병사 300인을 보내어 집을 포위하자 말을 타고 포위망을 뚫고 이들과 교전 끝에 모두 죽였다. 그러자 모문룡이 이것에 감탄하여 조선에 비장군(飛將軍)이 있으니 한번 만나기를 원한다는 격문을 보내와 이때부터 명성을 크게 떨쳤다.
1624년 이괄(李适)이 난을 일으켜 사신을 보내 부윤(府尹)을 위협하자 이를 죽이고, 병사들을 이끌고 서울로 올라와 안현(鞍峴)에서 이괄의 군사를 쳐서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 때에는 의주성을 수비하였는데 청나라 군사들이 갑자기 침입해오자 철편(鐵鞭)을 휘둘러 적병을 사살하고, 철편이 단절되자 장창으로 추격하여 수십인을 죽이고, 힘써 싸웠으나 적병에게 겹으로 포위돼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스스로 칼에 엎드려 순국하였다. 숙종 때 충신정문(忠臣旌門)이 세워지고, 병조참의에 추증, 의주의 구암사(龜巖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