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취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삼별초의 난과 관련된 무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관련 사건
삼별초의 난
목차
정의
고려후기 삼별초의 난과 관련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1271년(원종 12) 삼별초(三別抄)가 진도에서 패배하자 김통정(金通精)과 함께 탐라(耽羅)에 옮겨 항전하였다.

이듬해 4월 원나라의 초유문(招諭文)을 가지고 탐라로 가던 합문부사(閤門副使) 금훈(琴熏)이 보마도(甫麻島)에 표류하자 오인봉(吳仁鳳)·전우(田祐) 등과 함께 배 4척을 이끌고 가서 금훈의 배와 유문을 빼앗고 사람들을 모두 체포한 뒤 김통정에게 보고하였다.

그리고 금훈 등을 추자도(楸子島)에 가두고 지키다가 김통정의 회보를 받고 낡은 배 한 척에 늙은 수수(水手: 뱃사공) 1명을 붙여 금훈 혼자만 초유문자를 주어 돌려보내고 나머지 일행은 모두 죽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집필자
문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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