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재(任熙宰)가 지은 장막희곡.
임희재가 1954년에 <기류지 寄留地>라는 단막극으로 문단에 데뷔하여 몇 편의 단막극을 발표한 뒤, 처음이자 유일하게 쓴 장막극이다. 이 작품은 1956년에 발표된 그의 초기 희곡으로서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데뷔시절의 단막극들과의 차이점은 전작들처럼 토속적이면서도 암울하지만은 않고 비교적 서구풍이 강하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가 미국의 극작가 윌리엄스(Williams,T.)의 영향을 받은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무대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무허가건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주인공들도 인생의 패배자들이다. 즉, 무능한 동회장을 위시하여 그 옆방에 사는 철도원을 좋아하는 관능적인 후처, 그 후처의 타락한 이복동생, 전쟁으로 실명한 상이군인, 낙선민의원, 퇴직군수 그리고 자기가 운전하는 기차로 약혼녀를 치어죽인 기관사 등 비정상적인 인물들만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벌이는 삶의 행태도 자포자기적이고 비정상적이다.
복잡다단한 등장인물들 가운데에서 여주인공은 전락한 김영자이다.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그날그날 살아가는 동회장집에 동회장의 처제 뻘인 김영자가 찾아옴으로써 이야기는 흥미롭게 전개된다. 왜냐하면 김영자는 실명한 상이용사가 찾는 아내인 데다가 같은 이름의 여자를 어떤 포주가 거액을 걸고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그녀의 언니가 짝사랑하는 철도원마저 그녀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한 관계 속에서 이야기가 점차 미궁으로 빠져드는 것은 김영자가 과거를 일체 밝히지 않고 실명상이군인의 아내임조차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녀가 남편(실명상이군인)이 출정한 동안에 흑인과 혼혈아까지 낳은 바 있는 양공주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형부(동회장)를 비롯하여 낙선민의원 등 주변의 낙오자들이 김영자를 내세워 돈벌이를 하려 든다. 그런 줄도 모르고 김영자는 건강한 철도원에게 연정을 느끼면서 실패한 인생을 보상해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그 마지막 희망도 무너진다. 그녀의 남편인 실명상이군인이 그녀를 찾아낸 데다가 짝사랑하던 철도원마저 과거가 있는 남자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돈에 혈안이 된 형부는 김영자를 포주에게 알려준다. 그런데 김영자는 동명이인이었다. 모든 것에 절망을 느낀 그녀는 형부집을 떠나고 실명한 남편은 자살하는 것으로 막이 내린다.
이상과 같이 작가는 전쟁의 상처를 실명한 상이군인인 남편과 전락한 아내의 비극적 삶을 통하여 선명하게 묘사하였다. 당시 대표적 극단인 신협(新協)이 공연하여 비교적 성공한 무대를 만들었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