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진(金祐鎭)이 쓴 표현파 희곡. 1926년에 완성된 작품이며, 그의 5편의 희곡 중 하나로, 자전적(自傳的)인 내용이다. 겉표지에 ‘3막으로 된 표현주의극’이라고 독일어로 쓴 것처럼 표현파 희곡에 속하는 작품으로, 복잡하게 얽힌 유교식 가족구조 속에서, 진보적 서구사상을 지닌 한 젊은 지성인인 시인의 정신적 몰락과정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표현파극이 대체로 그러하듯 이 작품도 줄거리가 선명하지 못하다. 어스름한 달밤의 커다란 구식집 앞마당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제1막에는 젊은 시인(주인공)·모(母)·악귀·신주·제1계모 등이 나오는데, 시인이 계모와 다투는 것이 주 내용이다. 왜 이러한 나라, 이러한 집안에 자기를 태어나게 하였느냐는 젊은 시인의 항의가 대단하다. 그렇게 되자 비비(버너드 쇼의 작품 속의 주인공과 同名)가 시인에게 가족과 이별하도록 권고하는 것이 제2막의 내용이다. 그러나 제3막에 가면 가족이 시인과 그를 사랑하는 비비를 떼어놓으려 한다.
그런데 우유부단한 시인은 가족과의 결별을 계속 권하는 비비의 충고마저 받아들이지 못하고 삶의 돌파구를 찾아 방황하다가, 끝내 파고가 높은 절망의 바다에서 난파당하여 익사하고 만다.
이처럼 작가의 진보적 사상과 전형적 봉건가정은 궁극적으로 타협할 수 없었고, 결국 주인공의 파멸로 끝맺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전통윤리와 서양적 근대윤리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자살로 끝맺은 김우진 자신의 삶과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다.
이 희곡은 당시로서는 대단한 실험극으로서, 표현파답게 상징적임은 물론이고 구성도 일관성이 없으며 인물들도 무질서하다. 그만큼 <난파>는 당시로서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앞선 실험극으로서, 최초의 표현주의 희곡이라는 기록을 남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