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의 침입으로 공민왕이 복주(福州: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로 피난갔다가 1363년 개경으로 돌아왔다. 이때 종묘의 신주를 임시로 미타사(彌陀寺)에 봉안하고 환안도감(還安都監)을 설치하였는데, 상고할 만한 전적(典籍)이 없었으므로 남영신이 해인사 사고(海印寺 史庫)에 가서 삼례도(三禮圖)와 두우(杜祐)의 『통전(通典)』을 가져와서 의제(儀制)를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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