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유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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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태의 남파유고 중 표지
이안태의 남파유고 중 표지
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생존한 학자, 이안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44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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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생존한 학자, 이안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44년에 간행한 시문집.
개설

1944년 이안태의 아들 이득소(李得紹)가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김황(金榥)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족손 이규남(李圭南)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3권 1책. 목활자본.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2에 시 35수, 서(書) 8편, 설 2편, 기 3편, 축문 2편, 제문 1편, 유사 2편, 권3에 부록으로 가장 1편, 행장 1편, 유사 1편, 묘갈명 1편, 묘표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나라가 어지러운 때 고독한 자기의 뜻을 지키려는 고행의 면모를 지닌 감상적인 것이 많다. 「야방금강암(夜訪金剛巖)」·「춘행(春行)」·「대월(待月)」 등에서는 어두움 속에서 광명을 찾으려고 몸부림치는 노력이 엿보인다.

「백구(白鷗)」·「칠월칠일(七月七日)」·「궁(弓)」 등에서는 때를 놓친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면서도 막연하나마 때가 다시 돌아올 것을 기다리는 인고의 생활을 담고 있다. 「만성(謾成)」·「희제남파석(戱題南坡石)」에서는 기다리다가 지친 허탈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천교설시절우재독서제생(遷喬說示節友齋讀書諸生)」은 저자의 서당인 절우재에서 배우는 서생들에게 밝은 미래를 향해 도약할 자세를 촉구하는 글이다. 꾀꼬리가 깊은 골짜기에서 나와 교목(喬木)으로 옮기는 것이 마치 사람이 학문을 배워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려는 것과 같다고 설명하면서, 학문의 목적과 학문의 성취에 따른 이점을 밝히고 있다.

「흥학당동고록(興學堂同苦錄)」에서는 현령 이만시(李晩蓍)가 고을의 수재들을 모아 교육을 시키기 위해 흥학당을 지을 때 참여해 역사를 돕느라고 고생한 동지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그 내력을 기술하였다.

「절우재기(節友齋記)」에서는 산음현의 필봉(筆峰) 아래 절우재를 지어 수재들을 가르치면서 생도들을 제자로 보지 않고 친구로 생각해 오륜의 하나가 된다고 밝히고, 서로 도와서 학문을 익히고 도를 이루어 이름을 세워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밖에 「흥학당개기축문(興學堂開基祝文)」과 「유사」가 있다.

집필자
권오호(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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