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부터 백성들은 이 노인이 없으면 여행을 할 수 없었다.
노인이 없는 행상의 상품은 몰수하였으며, 국방상으로 중요한 지역인 서북면의 여행은 더욱 어렵게 하여 이 방면의 여행자에 대한 노인법을 별도로 규정하기도 하였다. 기근이 들어 식량을 구하러 다른 도나 읍으로 가려고 해도 노인을 발급받아야 하였고, 이를 어긴 자는 처벌되었다.
흉년이 들어 백성이 곤궁할 때에는 행상이 빈농에게 미치는 폐단을 막기 위하여 추수 때까지 상판노인(商販路引 : 행상에게 주는 여행허가증)의 발급하지 않고 이미 발급한 노인도 거두어들였다. 행상에게는 노인을 발급할 때 세를 거두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육상(陸商)에게는 매달 저화(楮貨) 8장, 수상(水商)에게는 대선(大船)에 100장, 중선에 50장, 소선에 30장을 세로 내게 하였다. 군인도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갈 때 병조에서 발급하는 노인을 지녀야 하였으며, 일본의 사신이 조선에 와서 상경할 때에도 그 노선을 기재한 노인을 필요로 하였다.
노인에는 본인의 신분·성명·연령·여행목적·목적지·기한·소지품(상품)의 수량과 발급기관·발급연월일 등이 기재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