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전받자빛’이라고도 한다. 1362년(공민왕 11) 홍건적의 침입으로 복주로 파천해 있을 때, 임시로 녹봉의 출납을 맡기 위해 설치하였다.
본래 녹전의 출납은 광흥창(廣興倉)의 소관이었으나 전란으로 중앙의 광흥창의 기능이 마비되자 당장의 녹봉지급을 위해 마련되었다. 그 소멸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난중의 임시관청이었던 만큼 환도 이후에 저절로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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